미국 중앙은행(Fed)이 상당기간 제로금리를 유지하면서 계속 돈을 풀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했다. ‘평균물가안정 목표제’를 채택해 한 해 물가상승률이 2%를 넘더라도 일정 기간 이를 용인하기로 한 것이다. 물가보다 고용에 집중하겠다는 얘기다.

이런 방침은 Fed가 지난 3월 코로나 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밝혀온 통화정책 변화를 명문화한 것이다. Fed는 수십 년간 고용과 물가 사이의 상충관계를 고려해 통화정책을 펴왔다. 즉, 필립스곡선에 따라 실업률이 물가를 자극할 만큼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면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렸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사상 최저 실업률에도 물가가 2%를 넘지 못했다. 따라서 Fed가 사실상 필립스곡선과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이런 변화는 인플레이션 없이 견고한 고용시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우리 견해를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Fed의 정책 변화는 당분간 인플레가 발생해도 잠시 덮어두고 제로금리와 무제한 양적완화를 이어가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미국 실업률은 10%를 넘는다. 실업자가 1800만 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기본책무가 물가안정을 통한 화폐가치 안정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Fed가 정치권과 월가에 영합한 것이란 비판도 많다.

이를 통해 경제가 살아난다는 보장도 없다. 일본은 디플레이션을 벗어나기 위해 물가 목표를 높이고 막대한 돈을 풀었지만 저성장 함정과 눈덩이 국가부채만 남았다. 일각에선 경제성장은 촉진시키지 못한 채 자산가격만 급등시켜 금융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미 뉴욕증시는 실물경제 위기와는 반대로 사상 최고치를 내달리고 있다. 안 그래도 거품이 커진 상황인데, 더 큰 거품을 초래할 수 있다.

Fed가 장기 저금리와 인플레를 용인하기로 함에 따라 유럽 일본 등도 강도 높은 통화완화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는 기축통화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한국은행이 함부로 따라할 일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 불안이 가시화될 때 한국처럼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가 먼저 외환위기에 봉착할 위험이 있다.

경제를 살리려면 정부가 세금을 낮추고 규제를 없애 기업 투자를 촉진하는 정공법 외에는 없다. 파월 의장도 “중앙은행은 세금, 정부지출, 규제를 바꿀 권한을 가진 선출직 공무원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경제살리기는 모든 정부, 모든 사회의 일이 돼야 하며, 단순히 Fed가 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한 작업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 말은 한은보다는 ‘기업 때리기’에 골몰하는 정부·여당이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