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부터 예술인과 특수고용직(특고) 종사자 48만여 명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을 위해 이들이 내야 할 고용보험료 중 80%(691억원)를 예산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관련 고용보험법 개정을 준비하면서 정부가 내년 첫 예산 소요액을 잡은 것이다. 정부는 코로나 사태로 인한 고용안전망 강화를 목표로 특고 종사자의 고용보험 가입을 2025년까지 250만 명으로 대폭 늘리기로 해 재원 마련에 험로가 예상돼오던 터다.

문제는 코로나 장기화로 실업자가 더 늘고, 정부 예산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점이다. 고용시장의 가장 약한 고리인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골프장 캐디, 택배기사, 대리운전기사 등 특고 종사자들이 고용보험 가입으로 몰릴 경우 추가 재원을 기존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에서 당겨쓸 공산이 크다. ‘소득 감소로 인한 자발적 이직’까지 실업으로 인정해주고, 특고 종사자의 고용보험기금 계정을 기존 근로자 계정과 함께 쓰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특고 종사자들의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사업주와의 고용관계가 명확지 않은 경우가 많고, 여러 사업주와 동시 계약을 맺는 등 고용관계가 복잡한 이들을 고용보험에 가입시키려면 먼저 충분한 재원 확보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아예 이들을 위한 ‘제2 고용보험’을 따로 만들거나, 실업급여 지급을 위해 정부 예산을 편성하는 등 여러 제안이 나온 것도 이런 문제를 예상해서다.

특히 고용보험은 수익자가 보험료를 내는 ‘수익자부담’을 제1 원칙으로 하는 사회보험이다. 어떤 근로자가 자신들이 낸 적립금이 기여도가 낮은 특고 종사자의 실업급여로 나가는 것에 흔쾌히 동의하겠나. 이는 사회보험이 아니라 공공부조일 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사회보험의 특성상 연대정신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는 무책임한 답변을 내놓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특고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고, 경영계와 논의도 없이 추진돼 노사정 협약에 배치된다”고 반발 하고 있다. 고용보험은 적립금 고갈로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부가 사회안전망 강화라는 목표만 앞세워 수익자부담 원칙을 허물어선 안 된다. 이제라도 재원 확보와 기존 근로자 계정과의 분리 등 고용보험 재설계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