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책이 관치와 포퓰리즘에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가운데 “금융정책에 금융노조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금융위원장의 발언이 나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주 ‘금융권 노사정대표자 간담회’에서 “금융정책 수립 과정에 금융회사뿐 아니라 양대 금융산업 노조 의견이 충분히 고려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은 위원장의 발언은 이날 회의 성격상 의례적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금융권에는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무엇보다 이번 회의가 박홍배 금융산업 노조위원장이 지난달 31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에 오른 직후 열렸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향력이 막강한 금융노조가 거대 여당의 옷까지 입고 노사정 간담회에 나서자 금융위원장이 “알아서 모시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해석이다.

이에 따라 ‘노동이사제’와 같은 금융권 현실에 맞지 않는 정책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금융노조는 지난달 여당 측에 노동이사제 도입, 금융공기업 지방 이전 철회, 금융인공제회 설립 등을 요구했다. 금융노조가 이날 간담회에서 노동이사제를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이 문제를 공식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 들어 금융산업에는 관치(官治)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왔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뉴딜펀드를 비롯해 대부업 최고 금리 인하 움직임, 공매도 연장, 라임펀드 100% 배상 등이 모두 그런 사례다. 그런데 이제는 관치에 이어 노조의 입김이 거세지는, ‘노치(勞治)금융’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노사정 간담회에 참석한 사용자 측 대표들은 “금융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당국과 노조가 규제개선 등으로 협력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런 요구가 과연 현실화될지는 극히 의문이다. 금융노조는 모바일화 등을 통한 비용 절감 일환으로 금융계가 추진 중인 영업점 축소에 반대해왔다. 소비자 불편 등을 내세우지만 노조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호봉제 폐지 같은 금융계 임금체계 개편 역시 수면 아래로 들어간 지 오래다.

혁신도 규제개혁도 사실상 실종된 금융권에서 앞으로 노조 의 목소리만 요란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