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칼럼] '부채 35조' 통합항공사, 뜨기나 할까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인천공항에서 울란바토르(몽골)를 오가는 왕복 항공기 티켓값은 약 60만원(비수기 기준)이었다. 비슷한 시간(약 3시간40분)이 걸리는 인천~홍콩(약 35만원)보다 두 배 가까이 비쌌다. 몽골노선은 대한항공이 30년간 독점했던 곳. 항공업계에서는 ‘황금노선’으로 통했다.

작년 7월 아시아나가 몽골에 취항하자 항공편 요금이 뚝 떨어졌다. 아시아나가 35만~40만원의 가격을 책정하자 대한항공 요금이 40만~45만으로 내려왔다. 경쟁 체제 도입은 소비자 편익으로 돌아왔다.

규모·업력에서 차이가 나지만 1988년 출범한 아시아나는 32년간 대한항공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복수 민항시대가 열리자 소비자 선택권이 커진 것은 물론 기내식 등 서비스도 크게 나아졌다. 양식 위주였던 국적 항공사의 기내식은 아시아나가 1995년 처음으로 김치를 제공하면서 확 달라졌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 추진 소식에 벌써부터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항공산업 위기가 심각한 데다 5대그룹 등이 아시아나 인수에 모두 손사래를 친 탓에 어쩔 수 없었다 해도 장거리 국제노선 독점의 부작용과 산업은행의 경영간섭 우려, 겹치는 인력·노선 정리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두 회사의 장거리 국제노선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단기간에 실적을 끌어올리려면 가격 인상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의 인천~뉴욕 왕복 항공권은 약 146만원(12월 9일 출발·12월 16일 귀국, 이코노미석)이지만, 비슷한 거리인 인천~워싱턴DC는 약 209만원이다. 뉴욕 노선에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경쟁하고 있지만, 워싱턴DC 노선은 국적기 중 대한항공만 취항하고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

독점의 폐해 못지않게 무서운 건 공기업이나 국영기업 특유의 비효율이다. 합병항공사는 사실상 준국영기업이 될 전망이다. 지분 10%를 갖게 될 산업은행은 벌써부터 경영에 깊숙이 관여할 태세다. 8000억원을 지원하는 대가로 주요 경영사항을 사전협의하고 동의받도록 했다. 사외이사 3명과 감사위원 지명권도 갖는다.

경영성과를 관리·평가하는 경영평가위원회도 설치하기로 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실적이 저조할 경우 해임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성과를 못 내면 담보로 잡은 조 회장의 한진칼(한진그룹 지주회사) 지분을 처분해 퇴출시키겠다는 것이다. 경영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기업의 효율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조 회장은 물론 국토교통부와 산은도 통합 이후 인위적 인력 구조조정과 운임·수송료 인상은 없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두 부실기업이 생존을 위해 통합하는데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이 없을 것이라는 말은 납득하기 어렵다.

세계 항공업계에는 유례없는 구조조정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아메리칸항공은 1만9000명을 해고할 계획이다. 유나이티드항공은 3만6000명의 임직원에게 해고예정 통보서를 보냈다. 캐세이퍼시픽항공은 자회사 캐세이드래곤을 폐업하기로 했다.

9월 말 기준으로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는 약 12조8000억원(부채비율 2309%), 대한항공은 약 22조7000억원(629%)이다. 두 회사가 1년 안에 갚아야 할 빚(유동부채)만 약 13조원에 달한다. 지난 3분기에 적자를 낸 대한항공이 채권단이 ‘자력 회생불가’로 판정한 아시아나를 인수합병하면서 인력 감축도 안 하고, 운임·수송료도 안 올리면 무슨 수로 실적을 개선해 채권단의 성과평가를 통과할지 궁금하다. 백신·치료제 개발에 기대어 코로나 위기가 끝나고 억눌렸던 항공수요가 폭발하는 요행을 바라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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