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제임스 김 회장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은 오늘날 한국 기업인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외국기업에는 어떻게 보이는지 새삼 일깨워준다. “한국의 최고경영자(CEO)들이 경쟁국보다 사법리스크에 많이 직면해 있다”고 지적한 김 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에 대해서도 “한국 CEO에게 얼마나 과도한 형사책임을 묻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쓴소리를 했다.

외국계 기업단체인 암참 회장이 국내 기업과 기업인에 대해, 그것도 법원 판결에 대해 이렇게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외국 기업인 눈에도 한국 기업인의 사정이 딱하고 안타깝다는 얘기다. 특히 이 부회장이 백신 확보를 위해 ‘특사’ 자격으로 출국준비 중에 덜컥 법정 구속된 것이 한발 떨어진 입장에서도 어이없는 일로 비친 것이다.

물론 정부는 행정부로서 자체 판단이 있을 수 있고, 법원도 논란과 파장은 불러일으켰지만 사법부로서 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속된 말로 ‘여기서 터지고 저기서 쥐어박히는’ 기업인 처지에서는 어디 한곳 제대로 의지하고 기댈 국가기관이 없다는 게 문제다. 거대여당이 장악한 국회는 오히려 더하다. 기업규제 3법, 중대재해법 등이 무리하게 통과된 과정에서 경제단체와 기업인들은 문전박대나 당했을 뿐이다.

외국기업 단체 회장 입에서 ‘사법리스크’라는 말까지 나왔는데, 여당과 정부가 기업인을 ‘잠재 범죄인’ 취급하며 쏟아내는 규제입법으로 인해 ‘정치리스크’도 갈수록 커지는 판이다. ‘포괄적 배임죄’로 사실상 세계 유일의 형사처벌 법규를 두면서도, 기업인이면 더욱 가중처벌하는 징벌 일변도의 규제입법을 보면 기업인을 ‘한풀이’ 대상으로 여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CEO에 대한 처벌 법률 조항이 2205개나 된다.

이런 식으로는 투자 회복과 고용 창출은커녕 경제 살리기도, 사회통합도 기대하기 어렵다. ‘하루하루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분’이라는 판에 어떤 CEO가 적극 경영에 나서겠나. 기업이 문을 닫거나 해외로 나가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기업가 정신을 죽이면 그 파장은 서서히, 깊고, 폭넓게 나타날 것이다. 당장의 투자확대 여부가 문제가 아니다. 기업인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는 게 바로 국가의 퇴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