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그린 버블과 그린 워싱
세계 1위 해상풍력 개발사인 오스테드는 덴마크 공기업이다. 이 회사는 덴마크 전체 전력의 46%를 풍력으로 만들어낸다. 친환경 에너지 열풍에 3년 동안 주가가 세 배가량 뛰었다. 하지만 실적 개선은 미미하다. 이달 초 영국 해상풍력 개발지 6곳 입찰에서도 다 떨어졌다.

그런데도 이 회사에 글로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펀드 자금이 몰리고 있다. 7~8년 전 모든 펀드가 애플을 담았듯이 오스테드를 사들이는 게 유행처럼 돼버렸다. 이에 반해 오스테드의 생산성은 영 신통찮다. 덴마크는 풍력으로 다 공급하지 못한 전기를 인근 국가에서 수입해 쓴다.

전문가들은 “최근 들어 친환경 관련 기업들의 가치가 과도하게 부풀려지는 ‘그린 버블(green bubble·녹색 거품)’이 우려된다”고 입을 모은다. 작년 말 기준 글로벌 ESG펀드 자산은 3500억달러로 1년 새 두 배 넘게 불어났다. 관련 주가도 치솟고 있다. 문제는 그 와중에 ‘거품’이 함께 커진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은 친환경과 거리가 멀면서 녹색경영을 흉내내는 이른바 ‘그린 워싱(green washing·위장환경주의)’ 사례도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대표적인 게 글로벌 석유기업들의 ‘넷 제로(net zero·온실가스 순배출량 0)’ 선언이다. 2018년부터 이탈리아의 에니(ENI), 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프랑스 토탈, 미국 엑슨모빌 등이 이에 동참했다.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 정도를 면밀하게 따지는 1~3단계의 ‘스코프(scope·범위)’ 개념을 들이대면 넷 제로 선언의 허실이 드러난다. ‘배출량’이 아니라 ‘집약도’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은근슬쩍 눈속임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국내 펀드상품 중에서도 ‘무늬만 ESG’인 게 많다. 16개 액티브 국내주식형 ESG펀드 가운데 펀드 성과를 비교할 수 있는 ESG 관련 지수를 벤치마크(비교지수)로 삼는 것은 세 개뿐이다. 종목 포트폴리오도 기존 펀드와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무턱대고 ESG 상품에 투자하는 건 금물이다. 업계 정보를 파고들면서 그린 버블과 그린 워싱을 피하는 안목도 길러야 한다. 펀드 운용사들은 전문인력을 확충하고 꼼꼼한 사후 관리에 나설 필요가 있다. 기업 또한 간판만 ESG로 바꾸는 식으로는 ‘워싱 경고’ 대상이 된다. 자칫 ‘벤처 버블’ 같은 비극이 재연될 수도 있다. 거품은 늘 위험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