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스멀거리는 인플레이션 그림자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경제가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지난 3월 소비가 9.8% 늘었고, 일자리가 91만6000개 증가하며 지난해 4월 14.8%였던 실업률이 6%로 하락했다. 영국 역시 3월 소매판매가 예상치보다 높은 5.4%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생산 활동이 재개되고 소비활동이 다시 살아나서다. 백신 접종이 지연되고 있지만 한국 역시 1분기에 예상치보다 높은 1.6%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코로나19의 긴 터널 끝에서 빛이 보이고 세계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다행스럽긴 하지만 마냥 낙관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세계 각국에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던 이유는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 탓에 사람들이 생산과 소비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 많은 돈이 주식, 코인, 부동산으로 몰려가 자산가격을 크게 올렸다. 미국의 S&P500과 나스닥지수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 말까지 각각 77.5%와 90.4% 상승했다. 한국의 코스피와 코스닥지수 역시 각각 110.7%와 123.9% 올랐다. 비트코인은 10배 이상 상승했으며, 알트코인들은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 한 해 미국의 집값은 2006년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인 11%를 기록했고, 영국은 9%, 25개국의 집값 상승률은 평균 5%에 달했다.(이코노미스트, 2021년 4월 8일자)

코로나19가 잦아들면 그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고 소비지출이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많이 풀린 돈이 재화와 서비스 가격을 올릴 것이고 재화시장이 과열될 것이다. 조금씩 그런 기미가 보인다.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월 1.7%에서 3월에 2.6%로 올랐다. 영국은 2월 0.7%에서 3월에 1.0%, 유럽연합(EU)은 1.3%에서 1.6%, 한국은 1.1%에서 1.5%로 올랐다. 한국의 생산자물가지수는 2.1%에서 3.9%로 상승했다. 최근 농산물 가격, 화물 운송료와 광물, 석유, 천연가스 등 많은 다른 원자재의 가격도 급격하게 오르고 있다.

인플레이션율이 목표치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인상하고 양적완화를 축소할 수밖에 없다. 양적완화 축소를 민간 투자자들이 떠안지 않는 한 금리는 오를 것이다. 이런 사정에 대한 예상이 미국 국채시장에 반영돼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이자율이 지난해 8월 0.5% 수준에서 올초 0.9%로, 최근에는 1.7% 수준으로 올랐다. 만약 인플레이션율이 예상치 않게 급등하면 최악의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금리가 폭등할 것이고 주식, 코인,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급락할 것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마찬가지로 자산가격 거품이 꺼지면서 경제위기를 맞을 수 있다.

지금의 경기회복은 코로나19 이전의 경제상태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회복이다. 최대한 인플레이션의 폐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플레이션 발생에 따른 폐해는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돼 부가 창출되도록 하면 줄일 수 있다.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모든 경제주체들이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경제자원을 새롭고, 수익성이 있고, 지속 가능한 투자프로젝트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경제를 경직시키는 규제들을 철폐 또는 완화함으로써 가능한 한 시장을 자유화해야 한다. 특히 노동력의 공급, 이동성, 가용성을 떨어뜨리는 규제를 제거해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감세를 통해 이윤과 자본 축적에 대한 세금을 가능한 한 줄여야 한다. 지금과 같이 기업 활동을 옥죄는 각종 법안을 쏟아내며 기업 환경을 악화시키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커다란 대가를 치를 것이다.

앞으로 인플레이션은 고요하지만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태풍의 눈이 될 수 있다. 언제 휘몰아칠지 모른다. 다가올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