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려울 때 재정 역할은 모두가 안다. 특히 ‘블랙 스완’처럼 닥친 코로나 국면에서 재정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문제는 급팽창한 확장재정이 적소에, 효율적으로 잘 쓰이고 있느냐다. 아울러 나랏빚이 과속하는 것은 아닌지, 감내할 만한 수준을 벗어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다. ‘건전 재정’의 절대 기준은 없다고 해도 ‘과속 팽창과 비효율 지출’이 나라살림에서 주된 경계 대상이라는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2017~2018년만 해도 10조원대였던 연간 재정적자가 지난해(119조원)와 올해(126조원) 잇달아 100조원을 넘어섰다. 2017년 660조원이던 국가채무는 올해 966조원, 내년엔 1000조원을 훌쩍 넘는다. 공무원연금과 공기업 빚까지 합친 국가채무는 2000조원에 달했다. 실감나게 계산해보면 나랏빚이 매일 3000억원씩 늘어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도, 국회도 위기감이 없다. 부실한 ‘재정준칙’조차 시행 시기를 2025년으로 미룬 법안은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어제 회의에서도 2025년까지 재정운용계획이 확정됐고, ‘재정의 지속 가능성’ 같은 말이 나왔다. 하지만 정부지출에 대한 혁신이나 재정 구조조정 의지는 여전히 안 보인다. ‘관제 알바’ 만들기나 효과 검증도 안 된 퍼주기식 현금 지원이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계속될 것이다. 중장기 나라살림의 골격을 짜고 큰 원칙을 점검·확립하는 국가재정전략회의라는 중요 행사가 그렇고 그런 요식절차로 전락했다는 인상을 지울 길 없다.
재정난이 국가 경제위기로 번진 남유럽 국가들의 수난을 지켜본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만성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남미 국가의 고통은 새삼 언급할 것도 못 된다. 하지만 정부부터 빚을 내서라도 우선 쓰고 보자는 식이고, 재정 구조개혁은 언제나 ‘NIMT(내 임기 중엔 불가)’다. 청년세대의 미래를 털어먹자는 것과 뭐가 다른가. 가정집 살림살이도 이러진 않는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고 역설했던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어제 회의에서 어떤 발언을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