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건순의 제자백가] 사마천의 '사기'는 가라
남송 시절 엽적이라는 학자가 있었다. 영가학파의 대표로, 주희의 도학파와 다르게 형이상학적 지식과 공리공담을 배격하고, 부국강병을 위한 실용지식과 경세치용을 말한 사람이다. 유학자지만 사실상 법가와 유가 사이의 학자라고 볼 수 있는데, 정통 유가와 다른 역사철학과 경전관을 갖고 있었다.

역사에서 도덕적 교훈을 얻으려 하지 마라, 불변의 진리를 경전에서 찾지 마라. 경전은 심법과 추상적 진리를 전하는 책이 아니라 역사서일 뿐이고, 그 책에서 부국강병을 위한 필연적 법칙과 정치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철저히 사실에 바탕을 둔 역사 서술과 인식을 말했고, 역사에서 주관의 배제를 말했다. 사실로서의 역사만이 치국을 위한 실용적 통찰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사고는 법가의 사관과 유사한데, 법가는 본래 철저히 냉정한 관조의 눈으로 역사를 보고 유가처럼 역사의 도덕화가 아니라 역사의 정치화를 추구한다. 그 노선을 걸은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감히 사마천의 ‘사기’를 비판하기도 했다,

사마천의 ‘사기’는 구체적 사실 속에서 인물이 엮어지는 춘추, 좌전과 달리 지나치게 인물 중심의 사서로 정통의 사법(史法)을 훼손시켰다고 주장했다. 인물 선택에도 주관과 임의성이 지나치게 개입돼 실록의 정신을 위배했다고 지적했다. 주관에 의해 쓰인 역사에 불과하고 역사의 진실을 협소하게 한정시켰다고 비판한 것이다. ‘사통(史通)’을 쓴 유지기(劉知幾)라는 사람도 비슷한 맥락에서 사기를 비판했는데, 사기는 동양에서 성역이었지만 이렇게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마천의 한계는 서양 역사학의 아버지 투키디데스와 헤로도토스를 보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이 두 사람의 책을 보면 주관적 윤리의 반복이 아니라 사실들에 대한 건조한 접근이 보인다. 인간 의지를 중심으로 한 인물 중심의 서술보다는 구체적 사실을 나열하면서 인물들이 엮어지게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념을 바탕으로 인물을 취사해 도덕적 훈계를 던지지 않고 거리를 둔 채 말하며, 사건의 객관적 진행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인간 의지와 무관한 역사 전개의 내적 필연성이 무엇인지 살피려 한다. 역사의 정치화와 건조한 관조를 추구한 법가라면 열렬히 찬성하겠지만 유가 중심의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자세다.

유능한 역사가는 유능한 의사 같아야 한다. 도덕적·윤리적 설교 대신 정확한 검사와 진찰, 진단, 처방을 내리는 의사처럼 진짜 역사가는 주관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를 살펴 보여주며 유사한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유용한 방침을 도출하는 데 애써야 한다. 동양 역사학의 아버지와 서양 역사학의 아버지 중 누가 유능한 의사와 가까울까?

사마천의 ‘사기’는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고 인간세를 해석하고 깨우쳐서 올바른 도리를 알려주려 했던 거장의 잠언이자 명상록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사랑했고 그를 역사학의 아버지로 섬겼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마천은 역사가로서 투키디데스와 헤로도토스보다 최소 두 수 아래일 수밖에 없고 그의 역사 세계에 빠져 산다면 우리는 서구의 상대가 될 수 없다. 물질문명만이 아니라 정신문명도 서양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혹시 모르셨는가? 물질문명만이 아니라 정신문명 역시 서양이 동양보다 월등하다.

미래 세대는 사마천보다 서구 역사학 아버지들의 책과 정신을 훨씬 많이 읽고 배워야 한다. 제갈량의 출사표보다 페리클레스 추도 연설을 보고 감동할 수 있어야 한다. 임금 개인에 대한 신하의 도리와 은혜보다는 자유, 자존을 위한 시민의 용기와 결단을 말한 페리클레스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 미래 세대는 현 세대보다 잘살아야 하고, 동도서기가 아니라 서도서기(西道西器)가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세대교체의 바람이 정치만이 아니라 지식, 사상의 장에서도 불지 않을까 싶은데 정신문명 역시 서구가 월등하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던 스승들, 사마천의 사기를 버리라고 말하지 않았던 선생들은 모두 가짜다. 그 가짜들이 가고 진짜 선생과 스승들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감히 100년 넘게 유보되고 금기시된 말을 이제라도 해보자. 서도서기가 답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