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기업의 과도한 부채와 부동산 등의 자산 거품에 대한 한국은행의 경고수위가 이례적으로 높아졌다. 한은이 어제 내놓은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국내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로 치솟았다고 지적한 것이다. 금융 불균형이 심화된 상황에서 외부 충격이 가해지면 최악의 경우 올해 GDP(국내총생산) 증가율이 -0.75%까지 곤두박질칠 것이란 아찔한 경고다.

민간부문 부채 급증과 자산가격 거품 우려는 많은 전문가가 누누이 지적해온 것으로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한은이 강한 톤으로 문제 제기에 나선 모습은 적잖이 놀랍다. 한은 같은 중앙은행은 거시지표와 실물지표를 정밀분석하면서도 생래적으로 ‘보수적’인 데다 금융시장에 가해질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직설적 표현을 자제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도 직접 경고하고 나선 것은 ‘재정 퍼붓기’와 수출 호조에 가려져 있지만, 한국 경제의 잠재리스크가 그만큼 커졌다는 위기의식의 발로다. 실제로 빚이 급증한 탓에 지난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한 기업이 10곳 중 4곳(39.7%)에 달한다.

한은은 특히 주택시장 거품을 우려했다. “금융 불균형이 누적된 상황에서 대내외 충격으로 디레버리징(빚 줄이기)이 발생하면서 급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이다. 주택가격 하락 위험은 이미 지난 1분기 이후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는 게 한은 시각이다. 자산가격 조정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 골칫거리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2013년 테이퍼링 탠트럼(점진적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긴축발작) 당시 3조3000억달러였던 미국 중앙은행(Fed) 총자산이 현재 8조달러대로 급증했다. 천문학적인 부채가 글로벌 위험자산으로 대거 유입된 상황이라 유사시 시장변동성이 급속히 확대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은은 “점진적으로 금융지원 조치를 조정해야 한다”며 재정 퍼붓기에 대해서도 분명한 경고를 날렸다. 코로나 지원이 장기화해 “기업구조조정이 지연되면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린다”며 선제적 대응을 강조한 것이다. 한은의 행보는 금리인상이 초읽기임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5월 소비자물가상승률(2.6%)이 9년1개월 만의 최고를 기록한 데 이어 생산자물가(6.9%)도 9년9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그런데도 거대 여당은 전 국민 위로금 지급으로 또 돈 풀 궁리에 여념이 없다. 더욱 뚜렷해진 위험신호를 언제까지 외면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