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기록적 폭염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자 석탄화력발전소 가동률이 90%를 웃돌고, 석탄 수입액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83.5%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력 사용이 피크를 찍은 지난달 27일에는 전국 화력발전소 58기 중 57기를 풀가동하고, 원자력발전소 3기(신월성 1호기, 신고리 4호기, 월성 3호기)를 긴급 투입해 겨우 ‘블랙아웃(대정전)’을 모면했다는 소식이다. 정부가 탈원전·탈석탄 정책을 호기롭게 밀어붙였으나 전력대란 우려에 말도 없이 입장을 번복한 셈이다.

이번 일로 탈원전·탈석탄 기조 아래 안정적 전력 수급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부도 이쯤 해서 탈원전 기조에 대한 전향적 입장을 밝히는 게 순리일 것이다. 정부가 지난 5일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이미 황당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원전 비중을 2050년까지 6~7%대로, 석탄발전 비중을 0~1.7%로 각각 낮추는 대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최고 71%로 끌어올려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시나리오다. 신재생 비중을 높이는 데 드는 천문학적 비용과 환경 파괴, 블랙아웃 위험 상시화 등의 문제는 물론 당장 내년 전력난은 어떻게 대비하고, 국민은 얼마나 전기요금을 더 내야 하는지 등의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장밋빛 전망과 숫자만 나열된 ‘뜬구름 잡기’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지금 이렇게 엉성한 탄소중립 실행 계획을 놓고 소모적 논쟁을 벌일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당장 11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탄소중립 실행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유럽과 미국은 탄소국경세 도입 계획 등을 발표하며 한국 수출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산업구조를 가진 한국 입장에선 달성가능한 목표와 실행계획을 내놔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열심히 준비하고 있지만 이들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와 손발을 맞춰 정교한 실행계획을 짜도 될까 말까 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업들과 합의 없이 마이웨이식 탄소중립안을 툭 던져놓을 뿐이다. 탄소중립 방안이 ‘정권 홍보용’이라는 얘기를 듣는 이유다.

탄소중립은 피할 수 없는 대세다. 이념과 정권 차원의 이해관계를 떠나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실현 가능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유일한 해답은 탄소 배출 없는 원전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무시하고 1년도 안 남은 정권이 ‘대못 박듯이’ 우격다짐으로 밀고 나갈 일이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