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전방위 가계대출 억제가 부동산담보대출과 대환대출 중단에서 신용대출 한도 축소로 이어지더니 급기야는 카드론(장기신용대출) 규제로까지 확산됐다. 집을 사거나 전셋집을 옮길 때 긴요한 자금 수요는 물론, 주식투자를 위한 증권사 대출(신용거래융자)까지 틀어막으려는 바람에 저축은행·캐피털사 문앞까지 달려가는 사람이 줄을 잇고 있다. 1년 새 1%포인트 오른 신용대출 금리도 문제지만, 2금융권에선 연 10%의 살인적 고금리를 물어야 할 판이다. 그러니 중산층조차 정부발 ‘묻지마식 돈줄 조이기’에 ‘대출 난민’으로 전락했다는 한탄이 곳곳에서 쏟아지는 것이다.

미국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이 예고된 가운데 4300조원까지 불어난 가계 기업 등 국내 민간부채가 경제위기의 뇌관이 되지 않게 관리해야 하는 금융당국으로선 고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차입 규모를 줄여야 글로벌 긴축국면에 대응할 수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어제 “가계부채 총량관리를 내년 이후까지 확장하고,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강도 높은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경제활동이 일어나는 곳에 ‘혈액’처럼 돈을 공급해야 하는 금융의 기본 역할을 도외시하는 정책이라면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빚 폭탄’이 우려된다고 돈줄을 무조건 조이는 게 능사일 수 없다. 더군다나 저(低)신용자는 연체를 해도 이자를 오히려 깎아주고, 고(高)신용자들만 대출 총량규제의 희생양으로 삼는 금융정책이 제 궤도를 지키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과도한 저신용자 배려가 도덕적 해이로 이어져 부실채권 발생 위험을 높인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 대출규모가 큰 고신용자를 옥죄면 집값 불안도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규제편의적 발상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지금의 가계부채 관리는 지극히 거칠고 투박하게 일방적으로 추진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무리한 규제가 부작용을 양산하면 더 큰 규제를 꺼내야 하는 자충수에 빠지게 될 것이다. 스물여섯 차례 부동산 대책 실패의 교훈을 떠올려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부채 증가 억제와 ‘돈맥경화’ 예방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잡고 실수요자 피해는 막는 정책이 중요하다. 정부 실력은 이런 데서 드러난다는 점을 국민은 이미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