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완의 21세기 양자혁명] 양자물리학의 수많은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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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에 대한 이해는 이미 알고 있거나 익숙한 것과의 비유를 통해 이뤄진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말은 꼭 천재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자연현상뿐 아니라 사회현상, 종교의 가르침도 그렇다. 예수, 부처, 공자 등 옛 성인들도 비유로 가르쳤다. 하지만 익숙한 지식이 새로운 것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잘못된 비유, 굳어진 편견이 그렇다.
양자물리학이 어렵게 여겨지는 것은 익숙한 비유도 없고, 양자물리학을 기술하는 수학에도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 TV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놀라워했지만, 어릴 때부터 TV를 보며 자란 사람들은 너무도 익숙해서 어떻게 TV에서 영상과 소리가 나오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너무 익숙해 궁금증이 없는 것도 새로운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이미 익숙한 것도 더 잘 익히면 새것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풀이할 수도 있겠다.
아인슈타인은 양자물리학의 확률론적인 속성에 대한 불만을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고 ‘주사위 비유’로 표현했다. 0과 1이 중첩된 양자상태를 측정하면, 어떤 때는 0으로 측정되고 어떤 때는 1로 측정된다. 똑같이 준비된 양자상태를 측정하면 그 측정 결과가 한결같지 않다. 어떤 때는 이렇게 되고 또 어떤 때는 저렇게 된다. 결정론적인 100% 인과관계가 아니라 확률론적인 측정 결과가 나오는 데 대한 불만이었다.
제논은, 과녁을 향해 쏜 화살은 전체 거리의 중간을 지나야 하고, 남은 반의 중간, 이렇게 무한 번 중간 지점을 지나야 하니, 과녁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궤변을 남겼다. 양자물리학에서는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하려는 양자상태를 계속 측정하면 변하지 못하고 원래의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양자 제논 효과’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실제 실험으로 확인됐다. ‘주전자를 계속 쳐다보면 물이 끓지 않는다’라는 ‘주전자 비유’는 한 가지에 집착하면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은 심리적인 현상을 나타낸다.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밥솥을 자꾸 열면 밥이 익지 않는다’는 말도 통할 것 같다.
서로 다른 자유도에 걸쳐서 중첩이 된 양자상태는 얽힘상태가 되는 수가 많다. 앞에서 본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동위원소, 검출기, 망치, 독가스병, 고양이의 생명이 서로 얽혀 있는 상태다. 가장 작은 양자 정보의 단위를 큐비트라고 하는데, 큐비트 두 개가 얽혀 있는 상태 중에 최대로 얽힌 상태를 생각해 보자. 하나의 측정 결과와 다른 것의 측정 결과는 100% 상관성을 보이기에 최대로 얽혀 있다고 한다. 이렇게 최대로 얽혀 있는 큐비트 둘 중 하나에 또 다른 큐비트를 가져와 얽히게 하면, 원래의 큐비트와는 얽힘이 깨진다. 즉 큐비트 한 개가 얽힐 수 있는 값에 최대치가 있다. 이를 ‘일부일처성(monogamy)’이라고 부른다.
양자물리학의 여러 연구 내용이 이렇게 비유로 정착이 되지만, 비유에 너무 현혹되면 안 된다. 물리적으로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그 개념을 발전시켜야 한다.
자연현상의 비유가 사회현상과 종교 가르침에 등장하듯이, 양자물리학 지식도 과학 바깥 분야에 등장한다. 원자 에너지 준위가 연속적이지 않아서, 한 에너지 상태에서 다른 에너지 상태로 변할 때 껑충 뛰어넘는다. 이처럼 급속한 발전을 ‘퀀텀리프(quantum leap)’ 또는 ‘양자도약’이라고 한다. 이 비유적 표현은 비즈니스 용어로 이미 자리잡았다. 양자물리학 연구가 더 발전하고 널리 알려져서, 양자물리학적 비유가 다른 분야에도 쓰일 것을 기대해본다.
김재완 < 고등과학원 부원장·교수 jaewan@kias.re.kr >
양자물리학이 어렵게 여겨지는 것은 익숙한 비유도 없고, 양자물리학을 기술하는 수학에도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 TV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놀라워했지만, 어릴 때부터 TV를 보며 자란 사람들은 너무도 익숙해서 어떻게 TV에서 영상과 소리가 나오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너무 익숙해 궁금증이 없는 것도 새로운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이미 익숙한 것도 더 잘 익히면 새것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풀이할 수도 있겠다.
아인슈타인은 양자물리학의 확률론적인 속성에 대한 불만을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고 ‘주사위 비유’로 표현했다. 0과 1이 중첩된 양자상태를 측정하면, 어떤 때는 0으로 측정되고 어떤 때는 1로 측정된다. 똑같이 준비된 양자상태를 측정하면 그 측정 결과가 한결같지 않다. 어떤 때는 이렇게 되고 또 어떤 때는 저렇게 된다. 결정론적인 100% 인과관계가 아니라 확률론적인 측정 결과가 나오는 데 대한 불만이었다.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비유'
‘슈뢰딩거의 고양이 비유’도 유명하다. 미시세계에서 원자의 양자상태를 중첩으로 나타낸다면, 고양이처럼 큰 거시세계의 존재도 중첩이 될 것인가? 상자 안에, 곧 붕괴할지도 모를 방사성 동위원소, 방사능 검출기, 검출기 신호로 작동되는 망치, 망치로 깨질 자리에 있는 독가스병, 독가스를 마시면 죽을 고양이 등이 있다. 상자 안에 있는 고양이는 죽었거나 살아 있다. 방사성 동위원소는 붕괴되지 않은 상태와 붕괴된 상태의 중첩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고양이의 삶과 죽음도 중첩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제논은, 과녁을 향해 쏜 화살은 전체 거리의 중간을 지나야 하고, 남은 반의 중간, 이렇게 무한 번 중간 지점을 지나야 하니, 과녁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궤변을 남겼다. 양자물리학에서는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하려는 양자상태를 계속 측정하면 변하지 못하고 원래의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양자 제논 효과’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실제 실험으로 확인됐다. ‘주전자를 계속 쳐다보면 물이 끓지 않는다’라는 ‘주전자 비유’는 한 가지에 집착하면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은 심리적인 현상을 나타낸다.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밥솥을 자꾸 열면 밥이 익지 않는다’는 말도 통할 것 같다.
폭발적 성장 '퀀텀리프' 되려면…
보통 ‘A 곱하기 B’와 ‘B 곱하기 A’는 같다. 그렇지만 양자물리학에서는 이 둘이 다른 경우가 많다. 양자불확정성 원리도 바로 그런 이유로 나온다. 보통의 수는 곱하기 순서를 바꿔도 같은 결과를 주지만, 행렬의 경우는 순서를 바꾸면 곱한 결과가 달라진다. 그렇게 해서 양자물리학을 행렬로 기술한 행렬역학이 나왔다. 양자 측정도 어느 것을 먼저 측정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다. 이와 관련된 양자물리적 특성을 ‘맥락성(contextuality)’이라고 부른다.서로 다른 자유도에 걸쳐서 중첩이 된 양자상태는 얽힘상태가 되는 수가 많다. 앞에서 본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동위원소, 검출기, 망치, 독가스병, 고양이의 생명이 서로 얽혀 있는 상태다. 가장 작은 양자 정보의 단위를 큐비트라고 하는데, 큐비트 두 개가 얽혀 있는 상태 중에 최대로 얽힌 상태를 생각해 보자. 하나의 측정 결과와 다른 것의 측정 결과는 100% 상관성을 보이기에 최대로 얽혀 있다고 한다. 이렇게 최대로 얽혀 있는 큐비트 둘 중 하나에 또 다른 큐비트를 가져와 얽히게 하면, 원래의 큐비트와는 얽힘이 깨진다. 즉 큐비트 한 개가 얽힐 수 있는 값에 최대치가 있다. 이를 ‘일부일처성(monogamy)’이라고 부른다.
양자물리학의 여러 연구 내용이 이렇게 비유로 정착이 되지만, 비유에 너무 현혹되면 안 된다. 물리적으로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그 개념을 발전시켜야 한다.
자연현상의 비유가 사회현상과 종교 가르침에 등장하듯이, 양자물리학 지식도 과학 바깥 분야에 등장한다. 원자 에너지 준위가 연속적이지 않아서, 한 에너지 상태에서 다른 에너지 상태로 변할 때 껑충 뛰어넘는다. 이처럼 급속한 발전을 ‘퀀텀리프(quantum leap)’ 또는 ‘양자도약’이라고 한다. 이 비유적 표현은 비즈니스 용어로 이미 자리잡았다. 양자물리학 연구가 더 발전하고 널리 알려져서, 양자물리학적 비유가 다른 분야에도 쓰일 것을 기대해본다.
김재완 < 고등과학원 부원장·교수 jaewan@kias.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