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했던 ‘전 국민 재난지원금 1인당 100만원 지급’이 현실이 될 조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말을 꺼냈을 때만 해도 ‘눈길끌기 전략’ 정도로 흘려들은 이들이 많았다. 전 국민 지급이 되다시피 한 ‘1인당 25만원 상생지원금’ 사용기한이 두 달이나 남아 추가 지급 논의 자체가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후보는 집권여당 후보 자격으로 공식 제안했고, 대선후보의 의지에 놀란 여당은 ‘이재명표 예산’을 적극 뒷받침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정부는 난감한 모습이다. 어제는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이 주머니 저 주머니 뒤진다고 돈이 나오는 상황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당과 이 후보는 정부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해 여야·당정 간 갈등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이재명은 한다’는 소위 국민효능감을 각인시키겠다는 여당의 의도가 감지된다. 하지만 ‘후안무치한 매표 행위’라는 야당의 비판은 차치하고라도, 최대 26조원에 달하는 재원을 마련할 길도 없다. 두 달 뒤면 모든 집행이 끝나는 올해 예산에선 더 이상 짜낼 재원이 없다. 10조원 안팎으로 예상되는 초과세수를 쓰자는 의견이 있지만 전용가능한 금액은 2조원 정도에 불과하다. 더구나 국가재정법에선 세수가 남으면 국가채무 상환에 우선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내년 예산 역시 이미 국회에 제출돼 특정 대선후보의 공약에 맞춰 수정하는 게 부적절하다.

결국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한데, 가뜩이나 나랏빚이 눈덩이인 상황에서 ‘국민 위로’ 명목으로 또 빚을 지는 건 염치없는 일이다. 이 후보는 “국가부채 비율이 크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며 국채발행을 시사했다. 하지만 압도적 다수의 전문가들과 국제 신용평가회사까지도 비(非)기축통화국인 한국의 국가부채를 우려하는 현실을 몇 마디 말로 부정할 수는 없다.

전 국민 지원금보다 더 시급한 것이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 지원이다. 손실보상법에서 주는 ‘쥐꼬리 보상’도 못 받는 자영업자만도 250만~300만 명에 달한다. 그들의 다급한 처지와 울분을 외면하고 빚을 내 전 국민이 1인당 48만~50만원씩 추가로 나눠갖자는 주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하기 어렵다.

재난지원금 퍼주기 소식은 ‘금리 발작’으로 이어져 정부가 2조원의 긴급 바이백 자금을 투입하는 소동을 불렀다. 대규모 물량 출회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에 국고채 금리가 급등(채권값 급락)한 것이다. 나라 금고가 여당 후보 꿀단지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