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 등 3094명을 신년 특별사면키로 한 결정은 여러 측면에서 뒷맛이 씁쓸하다. 고령의 전직 국가수반을 후임 대통령의 임기 내내 가둬둔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일단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박 전 대통령이 극심한 한국적 대결 정치의 직격탄을 맞았다는 저간의 사정을 고려하면 가혹하리만치 뒤늦은 결정이다.

시기적으로도 매우 부적절하다. 올초부터 여당 대표와 야당 소속 서울·부산시장이 ‘국민 통합’을 위한 사면을 요청했을 때도 문 대통령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러더니 대선을 불과 70여 일 앞둔 민감한 시점에 그들의 건의와 똑같은 명분을 내세워 전격 사면을 발표하니 냉소가 앞선다. 과거 정부들이 특별사면 시기 선정에 각별히 유의했던 최소한의 전통조차 무시한 셈이다.

‘내란 선동’의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과 ‘불법정치자금 수수’의 한명숙 전 총리를 슬쩍 끼워넣은 대목에서 얄팍한 정치적 술수라는 심증이 더욱 커진다.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통신·유류·철도·가스 등 국가 기간시설의 타격을 모의한 반체제 사범의 가석방을 박 전 대통령 사면과 맞춘 것은 누가 봐도 끼워넣기 아닌가. 노무현 정부 시절 두 차례나 이석기 사면에 관여했던 문 대통령인 만큼 의구심이 증폭된다.

9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아 사법적 단죄를 받은 한 전 총리의 복권도 공감하기 어렵다. 당초 문 대통령이 뇌물, 알선수재, 알선수뢰, 배임, 횡령 등 ‘5대 중대 부패’에는 사면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던 다짐은 역시나 공수표였다. ‘우리 편은 예외’라는 기막힌 내로남불이 사면권까지 오염시키고 만 결과다.

김부겸 총리의 설명도 엉뚱하다. “법질서 확립을 위해 중대범죄자는 제외했다”지만 두 사람이야말로 대법원 판결까지 시종 부정해온 명백한 법치 훼방꾼들이다. 지금도 법치를 위협하는 온갖 주장과 행동을 서슴없이 이어가는 이들의 복권을 위해 전직 대통령까지 동원되는 듯해 실망감이 증폭된다.

이뿐 아니다. 제주 해군기지, 사드, 밀양 송전탑 등 공권력 무력화에 앞장선 범법자들에게도 형선고 실효 및 복권조치가 단행됐다. 정작 국민적 성원이 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주요 기업인 사면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배제된 데 대한 설명은 없다. 모든 것을 정치화하는 신물나는 정치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