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125일 남았다. 대선까지는 65일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신년사는 그동안의 성과와 실책을 겸허하게 돌아보고, 남은 기간 과제에 대해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호소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정반대였다. 성찰과 반성 대신 자화자찬 일색이었으니 야당에서 “딴 세상 인식”이라는 비판이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다.

대통령의 신년사만 들으면 이런 태평성대가 따로 없을 듯하다. 대통령은 “막힌 길은 뚫고, 없는 길은 만들며” 대한민국을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와 방역 모범국가로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또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바라보고, 남북간 평화와 소득 불평등 개선 등도 업적으로 내세웠다.

과연 현실이 그런가. 거대 여당의 ‘입법 폭주’로 의회 민주주의가 실종된 지 오래고, 권력기관 개혁이란 미명 아래 신설한 고위공직자수사처는 권력 비호를 일삼다 1년도 안 돼 폐지론에 직면했다. K방역을 또 자랑했지만 폭압적 영업제한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영업자가 20명이 넘는다. 최근엔 병상 부족으로 구급차 출산과 응급실 투석으로 의료시스템 붕괴를 막기 급급한 실정이다. 이뿐인가. 북한에만 올인하다 중국에는 홀대받고, 미국·일본에는 패싱 당하는 ‘고립무원’ 외교를 자초했다. 친노조와 부동산 규제일변도 정책으로 청년 고용절벽과 집값 폭등 사태를 불러왔다. 그런데도 신년사 5699자에는 ‘우수함’ ‘자부심’ 등 자화자찬만 넘쳐날 뿐, 자성의 단어를 찾기 힘들다.

이제와서야 ‘대한민국 70년간의 성취’를 언급한 대목에선 실소를 금치 못할 정도다. 그동안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고, 반국가적 역사인식으로 일관한 집단이 누구인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세계 8위 무역국으로 끌어올린 주역인 기업인들을 기업규제 3법, 중대재해처벌법 등으로 옭아매며 잠재 범죄자 취급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고서 70년간 성공의 역사를 언급하니 임기 중 내세울 업적이 없다는 고백으로 들린다.

이와 달리 기업인들은 올해를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 시기로 보고 있다. 본능적인 위기의식으로 “지정학적 갈등이 이렇게 위협적인 때가 없었다”(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냉혹한 현실을 보니 마음이 무겁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우려를 내놨다. 그런데도 정부만 한가하게 태평성대를 논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부를 걱정해야 하는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