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탄소 포집'에 대한 장밋빛 환상
정부는 굴뚝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활용·저장하는 CCUS를 탄소중립의 핵심 수단으로 소개하고 있다. 심지어 천연가스의 개질로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그레이 수소에 CCUS를 접목하면 깨끗한 블루 수소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CCUS는 여전히 실험실 수준의 미래 기술이다. 사실은 CCUS가 정말 탄소중립에 도움이 되는지조차 불확실하다.

이산화탄소는 상온·상압에서 무색·무미·무취의 기체로 존재한다. 이산화탄소가 지구 환경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도 아니다. 배출량의 절반이 남아 있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고작 0.04%에 지나지 않는다. 배출량의 26%가 녹아 있는 강·호수·바다에서의 농도도 0.15%를 넘지 않는다. 심지어 천연가스(LNG)를 사용하는 발전소의 배출 가스에 들어 있는 이산화탄소 농도도 15%를 넘지 않는다.

그런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일이 쉬울 수가 없다. 천지사방에 흩어져 있는 티끌을 끌어모아 태산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흡수·흡착·분리막을 이용하는 기술도 있고, 화석연료의 연소에 금속 산화물을 이용하는 화학적 루핑 기술도 있다. 그러나 이산화탄소 포집에서 대단한 경제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쓸모가 많지 않은 이산화탄소는 세상에서 가장 값싼 소재이기 때문이다.

굴뚝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는 대부분 암모니아에서 요소를 합성하거나 유전에서 원유를 채취하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냉동식품과 의약품의 운반·저장에 필요한 드라이아이스 생산에도 쓰인다. 오늘날 산업적으로 활용하는 이산화탄소량은 연간 348억t에 이르는 전 지구적 배출량의 0.1%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장기간 안전하게 저장(CCS)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원유·천연가스를 채취한 뒤 생기는 지층 속의 빈 공간에 저장하는 방법이 가장 유력하다. 그러나 엄청난 규모의 저장 시설이 필요하고, 누출과 폭발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국토가 좁은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한반도 주변의 해저 지층이나 해외에 저장소를 마련하겠다는 제안도 비현실적이다.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저장소까지 운송하는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더욱이 일상생활과 산업 현장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무한정 쌓아두기만 할 수도 없다.

이산화탄소의 산업적 활용(CCU)은 훨씬 더 어렵다. 이산화탄소는 탄소 화합물 중에서 가장 낮은 에너지의 안정한 산화 상태에 있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에 전기 에너지를 주입해서 탄소중립을 위한 대체연료인 ‘e-연료(electrofuel)’를 생산하는 기술은 2009년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었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스티븐 추가 처음 제안한 아이디어다. 석탄·석유·천연가스가 생성되는 지질학적 과정을 흉내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값싼 셰일가스가 쏟아져 나오면서 e-연료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져 버렸다.

그렇다고 CCU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 생태계의 녹색식물과 녹조류가 탄소 유기물을 합성하는 광합성 반응을 흉내낸 ‘인공광합성’을 기대할 수 있다. 자연에서의 광합성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엽록소의 화학적 기능을 모방한 촉매를 개발하는 것이 핵심이다. 실험실 수준에서는 메탄올 합성 등의 제한적인 성과가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산업적 규모의 인공광합성은 여전히 아득하게 먼 미래의 꿈이다.

금속 산화물과 반응시켜 조개 껍데기·석회암과 같은 탄산염으로 변환시키는 화학적 전환도 규모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조림에 가장 크게 성공한 한국에 녹색식물을 이용한 ‘생물학적 전환’도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더 이상 나무를 심을 땅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CCUS는 태양광·풍력보다 훨씬 더 어렵고 불확실한 미래 기술이다. 본격적인 상용화를 시도해본 경험도 없고, 효과를 확인해본 적도 없다. 공상과학 수준의 장밋빛 환상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CCUS와 같은 미래 기술은 요란한 정책 제안으로 개발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실험실에서의 창조적이고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