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탈원전' 독일의 교훈
우크라이나에 전쟁의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미국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마주한 벨라루스에서 병력 3만 명 규모의 대규모 군사훈련을 하는가 하면, 우크라이나 인근에 병력과 군사 장비를 배치하는 모습이 위성사진 등을 통해 관측됐다. 미국은 이미 자국민 철수를 지시했고 대사관에도 철수 명령을 내렸다. 다른 서방 국가도 비슷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전쟁이 실제로 일어날 경우 미국을 위시한 서방 국가들의 개입이 필연적으로 따를 것이기 때문에 러시아로서도 침공의 실익이 크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게 반드시 철저한 손익 계산으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상황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날짜는 2월 16일”이라고 날짜까지 꼭 짚어 제시했다고 한다. 그만큼 전쟁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에도 여느 때면 유럽의 지도국 행세를 했을 독일은 마냥 어정쩡한 입장이다. 우크라이나의 거듭된 군사 지원 요청을 사실상 무시하고 있다. 급기야 우크라이나가 “나치 점령으로 800만 명의 목숨을 잃은 우크라이나 민족에 대해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하자 부랴부랴 약속한 것이 고작 군용 헬멧 5000개였다. “다음엔 베개를 보내줄 거냐”는 조롱이 쏟아졌다.

왜 독일은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이에서 엉거주춤한 태도를 취하고 있을까? 직접적인 이유는 에너지다. 독일은 천연가스 수요의 절반 이상을 러시아로부터 수입한다. 러시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가스관 밸브에 손만 얹어도 독일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발트해를 통해 러시아와 연결된 가스관 ‘노르트스트림’은 독일 경제의 생명줄이다. 생명줄 확대를 위해 ‘노르트스트림2’를 새로 깔았지만 개통을 앞두고 미국이 제동을 걸었다.

독일이 이처럼 러시아에 목줄을 잡히게 된 것은 이른바 ‘에너지전환(Energiewandlung)’ 때문이다. 독일은 앙겔라 메르켈 정부 출범 후 ‘에너지 구상 2010’을 통해 탈원전 에너지정책을 채택했다. 원자력 발전을 대신한 것이 재생에너지다. 문제는 이미 45%에 달한 재생에너지 의존도를 더 이상 높이기 어렵다는 데 있다. 나머지 전력 수요는 화력발전으로 메워야 한다. 탄소 배출 때문에 특히 가스발전에 의존해야 한다. 올해 말까지 남은 원전 3기도 모두 폐쇄되면 천연가스 수요는 더욱 늘어난다. 그만큼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목을 매게 됐다. 러시아는 걸핏하면 에너지를 무기화한다. 인근 국가에 가스 가격 인상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거부하면 밸브를 잠근다. 지난해 말에는 벨라루스와 폴란드를 거쳐 독일로 연결되는 ‘야말-유럽 가스관’을 틀어막아 가스값 폭등 사태를 유발했다. 미국이 유럽에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을 늘리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우리 정부는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60~70%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하지만 한국 지형과 기상조건을 고려할 때 거의 달성 불가능한 ‘꿈’이다. 게다가 재생에너지의 최대 약점은 간헐성(기상에 따라 들쭉날쭉한 발전량)이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갑자기 전력 사용이 늘어나면 석탄발전이나 가스발전으로 부족분을 채워야 한다. 탄소 배출량 저감을 위해 석탄 사용을 줄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니 결국 수입 천연가스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부 일각에서 북한을 경유하는 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해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들여오는 구상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지금 독일 사례는 이들로부터 공급받는 가스가 볼모가 될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한다. 독일에서 에너지 전환은 먼저 전력 가격 앙등을 가져왔고 이제 가격을 넘어 안보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그나마 독일은 이웃나라로부터 전력을 수입할 수 있다. 우리는 전력에 관한 한 ‘외로운 섬’이다. 당장에 전력을 수입할 이웃도 없다. 에너지 안보를 위해 탈원전 에너지 정책에 대한 심각한 재고가 필요하다. ‘식량 안보’라는 미명하에 쌀에 500%가 넘는 관세를 매기는 나라에서 그 못지않게 중요한 에너지 안보에 대해서는 왜 이리 무심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