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준의 인문학과 경제] 개혁은 '헌법정신 회복'에서 시작된다
지난 9일 선출된 대통령 당선인은 검찰총장 시절부터 ‘헌법정신 존중’을 강조해 왔다. 선거운동 기간에는 헌법정신을 ‘자유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로 규정했다. 대한민국의 근간이 되는 이 두 원칙이 지난 5년간 본인이 직접 체험한 검찰개혁을 비롯한 온갖 종류의 개혁으로 인해 심각히 손상됐다고 당선인과 그를 지지하는 국민들은 생각한다. 새롭게 출범할 정부도 이런저런 개혁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 사방에서 몰려온다.

집단과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평가를 하기 마련인 새 정부의 ‘개혁’이 당선자가 생각하는 ‘헌법정신’에 얼마나 충실할 것인가? 개혁이라는 말의 연원을 잠시 살펴보는 것도 이 난제를 풀어내는 단서가 될 수 있을 듯하다.

개혁으로 번역되는 ‘reform’은 라틴어 ‘reformatio’에서 왔다. 이 라틴어 단어는 중세 유럽의 수도원들이 원래의 설립 정신으로 되돌아가 본 모습을 회복하는 자기점검을 의미했다. 세속화의 때를 씻어내고 수도회 설립자들이 제시한 이상에 맞춰 ‘다시 형체를 잡아준다’는 의미에서 이 단어가 사용됐다. 수도원에서 파생된 중세 서구대학에도 ‘reformatio’의 개념이 적용됐다. 대학에서 ‘reformatio’는 대학의 토대가 되는 기독교 정신인 겸손, 이웃 사랑, 경건, 화평을 복원시키는 일을 뜻했다.

서구 역사의 전환점 중 하나인 16세기 종교개혁을 ‘개혁’으로 지칭한 것도 이와 같은 의미에서였다. 마르틴 루터를 위시한 종교개혁 지도자들은 대학이 키운 지식인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념에 맞춰 가톨릭교회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reformatio’로 이해했다. 서구 대학의 역사에서 이 단어가 자주 등장하기도 했거니와 자신들이 추구하는 바가 기독교 교회를 그 출발점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라는 뜻에서, ‘순수한 초대 교회’의 모습을 회복한다는 뜻에서 이 단어를 선택했다.

지난 몇 년간 왜곡되고 변질된 헌법정신 위에 대한민국을 다시 세워놓겠다는 대통령 당선인의 개혁은 중세 및 근세 서구에서 사용했던 의미에서의 ‘reformatio’여야 할 것이다. 새 정부의 정책과 제도는 대한민국의 헌법이 제시한 나라의 본 모습을 되찾는 조치들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자유’와 ‘자율’의 회복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강조하는 논의 중에는 ‘자유’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민주’만 남아 홀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규정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민주주의의 원어인 ‘democracy’를 그리스어 어원 그대로 번역하면 ‘군중지배’(demos ‘군중’+kratia ‘지배’)다. 직접 민주주의를 실험했던 고대 아테네는 군중지배 원칙에 따라 아테네의 가장 훌륭한 개인인 소크라테스가 범죄자인지 또한 그를 사형시킬지 여부를 수백 명이 모여 다수결로 결정했다.

민주주의의 어원 속에 도사리고 있는 다수의 폭력을 제어하려면 ‘자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유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다수가 소수를, 집단이 개인을 짓누를 수 있는 권리는 더욱더 아니다. 자유는 한 개인이나 한 기관이 스스로 알아서 자신의 고유한 일들을 결정할 수 있는 실질적 재량권과 자율권을 의미한다.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는 자연스럽게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한다. 각 개인과 법인이 자신의 이익을 국가의 과도한 간섭 없이 자율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체제가 바로 자유시장경제인 까닭이다. ‘자유방임주의’라는 불쾌한 말로 번역되는 프랑스어 ‘laissez-faire’를 그대로 옮기면 ‘하도록 놔두다’이다. 지난 5년간 모든 분야 모든 영역에서, 국가의 에너지원인 원자력 발전부터 국민의 행복에 직접 영향을 주는 부동산 시장까지, 심지어 필자가 몸담고 있는 사립대학의 사소한 행정까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국가 권력의 부당한 간섭만 제거해도 새 정부는 대한민국을 헌법정신으로 되돌려 놓는 ‘reformatio’, 즉 회복과 복원으로서의 개혁을 완수한 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