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중고로 팔려고 매장에 전화했더니 주유가 돼 있는지 묻더라. 기름이 가득 차 있으면 차값을 더 쳐준다는 얘기다.”

요즘 미국 SNS에서 확산하고 있는 우스갯소리다. 세계 최대 산유국에서도 선뜻 운전대를 잡기 두려울 정도로 기름값이 뛴 탓이다. 미국 내 50개 주 중에서 특히 고통받는 곳이 있다.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두 배나 되는 ‘부자 동네’ 캘리포니아주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의 휘발유 가격은 29일(현지시간) 기준 갤런(3.79L)당 5.91달러다. 전국 평균(4.24달러) 대비 40%나 높다. 한국 교민이 많이 거주하는 로스앤젤레스(LA)시나 샌디에이고시에선 역대 처음으로 갤런당 6달러를 넘어섰다. 인접한 오리건주(4.72달러) 유타주(4.43달러) 콜로라도주(3.99달러)는 물론 살인적인 물가로 악명 높은 뉴욕(4.34달러)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환경규제·세금 전국 최고 수준

캘리포니아의 유독 비싼 기름값은 현지에서도 미스터리인 모양이다. 텍사스 루이지애나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정유 시설이 밀집한 곳이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 원인을 조목조목 분석했다.

우선 2013년 민주당 주도로 도입된 이산화탄소 배출 상한제 때문이다. 역내 정유사와 제조공장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일정 규모 이하로 감축해야 한다. 목표를 못 맞추면 다른 기업에서 탄소배출권(크레디트)을 사야 한다. 배출 상한이 계속 낮아지자 기업 부담이 커졌다. 자연스럽게 소비자에게 전가됐다. 서부주석유협회(WSPA) 자료를 보면 이 규제 시행에 따른 휘발유값 상승분이 갤런당 24센트에 달했다.

2015년엔 더 센 잣대가 마련됐다. 정유사들은 생산과 운송, 정제, 후처리 등 모든 과정에서 ‘탄소 집중도’를 낮춰야 한다. 더 비싼 바이오연료를 혼합할 수밖에 없게 됐다. 기름값에 갤런당 22센트 추가되는 요인으로 계산된다. 2017년에는 세금까지 갤런당 12센트씩 올랐다. 휘발유에 붙는 물품세다. 이미 전국 최고인 주 소비세(8.68%)와는 별도다. 주민들은 이런 지역세 명목으로 갤런당 73센트를 내고 있다. 전체 평균(39센트)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개혁없이 또 '현금 배포' 미봉

직접적인 환경 규제는 더욱 심해졌다. 마라톤 페트롤리엄, 필립스66 등 굴지의 정유사들은 캘리포니아 연안의 정제 시설을 폐쇄하거나 재생에너지 관련 시설로 잇따라 전환했다. 정유사들이 기존 공장을 재생 관련 시설로 전환하면 주정부는 규제를 낮추고 보조금까지 지급했다. 2017년 이후 5년간 사라진 캘리포니아 내 정유 설비는 전체의 약 12%다. 내년까지 12%가 추가로 폐쇄될 예정이다. WSJ는 “현재의 불가사의한 가격이야말로 높은 세금과 규제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개빈 뉴섬 주지사는 ‘유가 보조금’ 카드를 꺼내 들었다. 높은 기름값에 허덕이는 주민을 대상으로 일회성으로 400달러씩 나눠주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논란은 더 커졌다. 우선 차량을 소유하지 않은 저소득층은 받을 수 없다. 총 110억달러 규모의 보조금이 풀리면 휘발유를 포함한 물가를 더 자극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400달러를 받더라도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다른 주에 비해 연간 평균 860달러씩 더 지출하는 셈이다. 휘발유값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미봉책 대신 개혁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 배경이다. 캘리포니아의 유독 비싼 기름값이 그동안의 에너지 전환 속도가 적정했는지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