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신중한 인플레 파이터'를 기대한다
인플레이션이 최대 불확실성으로 거론되면서 폴 볼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얘기가 부쩍 많이 나온다. 최근에는 볼커 전 의장의 전례에 따라 금리를 충분히 올릴 수 있다는 제롬 파월 의장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미국 금리가 올해 빠르게 인상될 것이라는 우려도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볼커 전 의장의 ‘1970년대식 통화정책’이 오늘날에도 유효해 빠른 금리 인상을 예측하는 것이 과연 논리적으로 합당한 것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특히 미국 금리에 민감한 중앙은행과 금융기관들은 과거와 현재 통화정책 환경을 비교하면서 차분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1970년대는 물가 불안이 극심했다. ‘더 그레이트 인플레이션(The Great Inflation)’으로 불리는 당시 상황은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베트남 전쟁 참전, 국민의료보장제도(Medicare) 등 사회복지 확대, 세계보건기구(WHO)의 제1호 팬데믹인 홍콩독감 대응 등을 위해 재정 지출이 급증했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통화 공급이 증가한 것이 주된 배경이었다.

국제금융 차원에서도 1970년대는 달러 중심의 금환본위 고정환율 체제가 붕괴된 대전환기였다. 이에 따라 각국이 통화정책을 자국 상황에 맞게 수립할 수 있게 되면서 재정정책과 더불어 거시경제 안정을 위한 통화정책의 역할이 부상했다. 하지만 두 차례 석유파동으로 세계가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하자 통화정책이 딜레마에 빠진 것도 이때다.

이처럼 10년 넘게 경제 불안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1979년 취임한 볼커 의장이 이끄는 Fed가 3년간 기준금리를 11.5%에서 21.5%로 인상한 것은 어쩌면 무모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1983년부터 1990년대까지 물가가 안정되는 추세를 보이고 연평균 성장률도 4%에 가깝게 유지되면서 볼커 전 의장은 미국 경제 재도약의 영웅으로 평가받게 된다.

물론 금리를 빠르게 올리는 과정에서 볼커 전 의장도 실업률이 11%까지 오르는 경기 후퇴를 피할 수 없었다. 그 이후 1990년대까지 이어진 미국의 호경기를 통화정책만의 성과로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특히 1985년 플라자 합의 때 일본과 독일이 미국의 달러 가치 하향 조정 요구를 거절했거나 1987년 블랙먼데이 당시 미국의 요구를 무시하고 일본은행이 자산 거품 우려에 대응해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더라면, 미국 경제가 상당히 불안한 모습을 보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볼커 전 의장의 선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제학자들의 근거는 더 넓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 상황을 판단하고 문제의 핵심을 찾아 집중했다는 점에 있다. 석유파동과 같이 일시적일 수도 있는 공급 측면의 비용 상승이 물가 불안의 주요인이라는 판단을 넘어, 1960년대부터의 물가 불안으로 인해 축적된 가계와 기업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해소하는 데 정책 초점을 맞췄다. 인플레이션의 관성을 끊어야 경제주체들이 생산성 제고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되고 성장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미국 경제 상황은 볼커 전 의장 당시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코로나 위기 이후 확장적 정책에 힘입어 수요가 회복하고 있고 공급 차질 문제와 더불어 우크라이나 사태로 원유 및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모습은 유사하지만, 2년도 안 되는 기간에 발생한 현상이다. 더욱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디플레이션을 걱정할 정도로 안정된 물가를 10년간 경험해 온 상황에서 최근의 물가 급등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강해졌다고 하기도 어렵다.

자산 가격을 같이 고려할 경우, 최근 미국 경제는 1990년의 일본과 더 비슷한 측면이 있다. 석유파동 이후 물가가 안정됐던 일본에서 1989년부터 시작된 인플레이션과 자산시장 거품에 대응해 급격한 금융 긴축을 시행한 뒤 장기 침체에 진입하게 된 역사를 다시 들춰봐야 할 필요가 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다. 코로나 위기가 지속되고 국제 정세도 불안한 지금은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는 영웅이 절실하다. 하지만 과거의 영웅이 지금도 영웅이 되기는 쉽지 않다. 불확실성이 높은 경제의 키를 잡은 인물은 그래서 자신의 영웅을 말할 때도 신중해야 한다. 파월 의장이 금리 인상의 부정적 여파를 우려하는 시장의 시각을 충분히 살피면서 진정성과 일관성을 잃지 않는 신중한 인플레이션 파이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