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정치 양극화 심각…'네 가지 민주주의'로 국민통합 이뤄야 [김상준의 민주주의를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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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DEEP INSIGHT
(1) 대통령, 설득 통해 '타협 민주주의' 추구해야
(2) 양당제 고착화…연정 어려운 韓 정당정치
내각에 초당적 인사로 '합의 민주주의' 모색을
(3) 미국 전문가주의, 정책의 정치적 왜곡 막아
정권에 안 흔들리는 '역량강화 민주주의' 필요
(4) 시민사회 통합 조건은 '자기제한 민주주의'
(1) 대통령, 설득 통해 '타협 민주주의' 추구해야
(2) 양당제 고착화…연정 어려운 韓 정당정치
내각에 초당적 인사로 '합의 민주주의' 모색을
(3) 미국 전문가주의, 정책의 정치적 왜곡 막아
정권에 안 흔들리는 '역량강화 민주주의' 필요
(4) 시민사회 통합 조건은 '자기제한 민주주의'
정치적 양극화는 한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미국 민주주의도 양극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적 양극화에는 우리에게만 적용되는 특수성이 있으며, 그 정도가 다른 나라보다 심하고,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한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갈등은 이스라엘, 미국과 같은 수준의 최고 등급으로 분류된다. 이스라엘은 종교, 미국은 인종 갈등이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한국은 인종, 종교, 언어 등의 원초적 균열이 존재하지 않는 동질성이 매우 높은 사회다. 어떻게 동질사회에서 이질사회 수준의 갈등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동질사회에서는 정치적 동원을 위한 방법이 제한돼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 아자와 타자에 대한 확연한 구분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정치적으로 선택된 방법은 타자를 정략적으로 지목하고 증오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아자를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지역주의를 비롯한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bipolarization)’가 등장한 이유다. 지난 선거에서는 지역 이외에도 젠더, 세대, 집값, 안보 등 다양한 요소가 투표를 결정했다. 결국 정치 양극화는 사회의 하부 영역으로 전이되면서 여러 대립축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대립축마다 양극화가 나타났다.
이렇게 치열하고 조각나고 불안한 정치 지형에서 국민 통합은 간단하지 않다. 인사가 만사라고 인사를 잘하면 통합될 것이라는 생각, 정치는 협상이니까 야당과 협상을 잘해나가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 특정 정책으로 통합을 유도하려는 생각 등은 모두 한계가 있다. 분열과 대립의 범위가 넓으며, 불안정의 이유가 근원적으로 ‘젊은 민주주의’가 갖는 미완의 민주주의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보다 넓은 시야에서, 민주주의 자체를 업그레이드하는 가운데 국민 통합을 위한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통합을 위한 네 가지 민주주의를 살펴본다.
다른 한편, 국민들은 통합을 위한 합의 정치를 구현하는 대통령을 높이 평가한다. 케네디 대통령은 비록 1위를 했지만 재임 기간은 3년에 불과했다. 대부분 두 번째 임기에서 인기가 하락하는 것을 감안하면 미국에서 가장 높이 평가되는 대통령은 바로 2위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라고 하겠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재임 기간 8년 동안 꾸준히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이유는 냉전으로 어려운 시기, 밖으로는 자유 진영을 이끌고 안에서는 중도 노선을 선택해 소위 ‘역동적 보수’라고 불리는 길을 걸으면서 초지일관 ‘타협의 민주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에는 여러 모습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빛이 나는 것은 바로 정권의 민주적 이양이다. 우리는 투표를 통해 정권의 평화적 교체를 이룩했지만 정권 이양은 순조롭지 않았다. 이제는 정권의 ‘부드러운’ 이양이 요구된다. 정권의 부드러운 이양은 현직과 당선인 두 대통령이 힘을 합해 국민에게 던지는 통합의 메시지다. 이는 단순한 국정업무 인수인계 이상의 상징성을 갖는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정당을 불문하고 현직 대통령이 당선인에게 개인적 편지를 보냄으로써 협력의 관행을 제도화했다. 임기를 마치며 국익 차원에서 경험한 개인적 훈수가 녹아 있으며 협력을 위한 전향적 자세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정당 차원의 합의민주주의가 쉽지 않은 영국, 미국, 한국 모두는 제도적으로 승자독식의 성격을 갖고 있다. 승자독식은 패자의 대표성이 전면 차단되는 비민주적 측면이 있으며, 이는 사실 정치적 갈등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정부 구성 단계에서 초당적 인사로 협치를 모색하는 것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존 바이든 대통령까지 14명의 대통령이 116명에 이르는 다른 당의 인사를 장관 또는 행정부 요직에 임명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내각에서 일하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유임시켰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아프가니스탄 문제 해결을 위한 적임자가 필요했고, 게이츠 또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신의 일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게이츠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국방장관으로서 정당이 다른 두 대통령과 일하게 됐다. 오바마의 제안은 당시 안보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었지만 이는 화해와 통합을 위한 새 대통령의 선의로도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협치는 미국 정당체제가 가지는 여유로움에 기인한다. 미 의회에서 법안 의결 시 자기 당 법안에 대한 소속 의원의 지지는 대략 70% 정도에 그친다. 의원들이 우선순위는 각자 다르겠지만 의정 활동에서 지역구 이익, 정당 이익, 국익 등을 동시에 고려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에 비해 ‘닫힌’ 정당체제를 갖고 있다. 중앙당의 공천, 항시적 당 조직, 집권적 당 지도부, 결속력이 강한 당원 등을 중심으로 정당이 운영된다. 이 같은 운영 방식은 경직화된 정당 관계를 초래한다. 우리는 제도와 조직이라는 단어를 구분해서 사용한다. 우리 사회를 장기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기본가치가 반영된 것을 제도라 하고, 그렇지 않고 수단적 속성을 가진 것을 조직이라고 한다. 정권 획득의 수단이라는 성격이 지나치게 강조된 한국 정당은 제도보다 조직의 성향이 강하고, 결국 정치 양극화를 증폭시킨다.
다행히 우리에게 한 가지 희망이 남아 있다. 우리 사회는 인종, 언어, 종교에 대한 원초적 균열이 두드러지지 않은 동질사회라는 것이다. 우리는 K문화의 성공에 다 함께 열광한다. 문화적 동질성 때문이다. 많은 민주주의 국가는 원초적, 사회적 균열을 극복하기 위해 고도의 정치적 노력을 하지만 늘 만족스럽지 않다. 사실 우리는 마음만 잘 먹으면 협력이 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정당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
19세기까지 영국, 미국, 프랑스에서는 선거 후에 정치적 배려로 정부 일자리를 챙겨주는 소위 ‘정치적 후견제’가 뿌리 깊게 자리했다. 관행은 자성적 개혁으로 근절됐다. 후견 관행을 국가 후진성의 근본요인으로 간파하고, 국가 관료는 시험을 통해 일정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개혁을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20세기에 들어와서 전문가주의가 관료제에 정착됐다. 전문가주의는 미국의 실용주의와 어우러지면서 몇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첫째, 전문가주의는 정책 합리성을 바탕으로 공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특화된 정보와 지식을 통해 문제 해결 중심으로 업무수행 범위가 확장됐다. 셋째, 행정 능력의 향상은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가의 업적으로 이어졌다. 결국 행정 관료는 민주주의 원칙에 의해 대통령에 복속됐지만, 대통령도 자신의 업적을 위해 전문가주의에 의존한 것이다. 전문가주의란 결국 소극적인 정치적 중립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공익과 국익을 추구해 정책의 정치적 왜곡 내지는 이용을 방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관료는 일본 관료와 비슷하게 고시를 통해 관료를 선발하면서 업무수행 행태는 전문적 역량보다 관리적 역량이 중심이 됐다. 그 결과 행정 수반에 대한 복속도가 매우 높은 가운데, 정책의 정치적 판단에 대해 조정, 수정, 대안 제시를 하는 전문성, 즉 정책의 완결성을 높이는 내부 기제는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이 필요 이상으로 크게 요동치는 이유다.
현재 필요한 것은 어떻게 정치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조정을 통해 통합을 이룩하는가다. 우선 ‘공동선’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숙의민주주의’의 핵심이다. 하지만 토론마저 시작하기 힘든 상황, 또는 토론을 하면 할수록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는 통합 자체가 중요한 공동선이 됐음을 암묵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19세기 노예제에 대한 언급을 터부시하는 ‘언급 자제’ 규칙이 미 의회에 등장했다가 표현의 자유 침해 이유로 사라졌다. 하지만 홈스라는 정치학자는 대립이 첨예한 현대 다원적 민주주의에서 언급 자제는 민주주의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데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무리한 주장, 상대방을 자극하는 언동은 삼가면서 타협이 쉬운 분야에서 합의를 모색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살려내는 길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 시민사회에서의 화해와 통합은 정치화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정치가 다수와 소수, 또는 적과 동지로 분열하는 기제로 작동한 것이다. 정치의 속성에는 원래 경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경합은 정치 영역에 가둬져야 하고, 그때 시민사회는 보다 자유롭고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소모적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소통에 있어서도 자제의 요소가 필요하고, 정치 영역이 시민사회를 ‘식민화’하지 못하게 제한적이어야 한다. 통합을 위해서 ‘자기제한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정치를 너무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정치가 지나치게 격화된지도 모른다. 정치학자 엘스터는 예술, 과학, 운동, 체스와 같이 정치도 참여하는 그 자체가 목적일 수가 있다고 했다. 오늘은 졌지만 내일은 이길 수 있으며, 오늘은 이겼지만 내일은 질 수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면서 정치는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증명해내고 있는 것이다.
■ 김상준은
비교정치, 국제정치, 정치경제 영역에서 정치 메커니즘을 비교 분석하는 학자이며, 동아시아 국가의 민주주의 업그레이드에 관심을 갖고 있다. 연세대, 일본 게이오대, 미국 시카고대에서 비교정치, 일본정치, 국제정치, 정치경제를 공부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 대외협력처장과 행정대학원장을 지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비교민주주의, 사회 이중구조, 메커니즘의 정치학, 일본 정치, 동북아 국제관계 등이다.
이렇게 치열하고 조각나고 불안한 정치 지형에서 국민 통합은 간단하지 않다. 인사가 만사라고 인사를 잘하면 통합될 것이라는 생각, 정치는 협상이니까 야당과 협상을 잘해나가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 특정 정책으로 통합을 유도하려는 생각 등은 모두 한계가 있다. 분열과 대립의 범위가 넓으며, 불안정의 이유가 근원적으로 ‘젊은 민주주의’가 갖는 미완의 민주주의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보다 넓은 시야에서, 민주주의 자체를 업그레이드하는 가운데 국민 통합을 위한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통합을 위한 네 가지 민주주의를 살펴본다.
대통령, 설득과 ‘타협의 민주주의’
첫째, 대통령 본인이다. 권력 분립의 대통령제는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 다양한 선거를 통해 여러 목소리가 반영된다. 대통령제에서는 이러한 여러 목소리를 ‘국민의 소리’ 차원에서 듣고 국익을 수호하기 위해 전방위적 ‘통합의 힘’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 대통령이다. 그리고 통합의 힘이란 결국 ‘설득의 힘’에서 나온다. 대통령은 헌법상의 많은 공식적 권한을 부여받았지만, 협상하고 절충하고 타협하면서 협치를 이뤄내는 것이 성공적 대통령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대통령을 최고 권력기관보다 ‘최고의 조정기관’으로 바라보는 견해가 증가하고 있다. 대통령이 앞장서 나가고 설득하고 영감을 주고 신뢰를 만들고 인재를 끌어들여야 하는 이유다. 대통령의 업무 추진력과 태도는 국민 통합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미국의 한 연구는 대통령의 업무 추진을 적극과 소극, 업무 태도를 긍정과 부정으로 분류했다. 예를 들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업무 추진에 있어서는 적극적이지만 업무 태도는 부정적이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긍정적 태도로 업무에 임했지만, 업무 추진에 있어서는 소극적이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긍정적이며 또한 적극적이었다. 2020년 갤럽 통계에서도 케네디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으로 뽑혔다. 국민은 밝고 긍정적이고, 동시에 많은 일은 하는 대통령을 원하는 것이다. 이 경우 국민의 ‘순응비용’은 줄어들고, 대신 통합의 정도는 높아간다.다른 한편, 국민들은 통합을 위한 합의 정치를 구현하는 대통령을 높이 평가한다. 케네디 대통령은 비록 1위를 했지만 재임 기간은 3년에 불과했다. 대부분 두 번째 임기에서 인기가 하락하는 것을 감안하면 미국에서 가장 높이 평가되는 대통령은 바로 2위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라고 하겠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재임 기간 8년 동안 꾸준히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이유는 냉전으로 어려운 시기, 밖으로는 자유 진영을 이끌고 안에서는 중도 노선을 선택해 소위 ‘역동적 보수’라고 불리는 길을 걸으면서 초지일관 ‘타협의 민주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에는 여러 모습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빛이 나는 것은 바로 정권의 민주적 이양이다. 우리는 투표를 통해 정권의 평화적 교체를 이룩했지만 정권 이양은 순조롭지 않았다. 이제는 정권의 ‘부드러운’ 이양이 요구된다. 정권의 부드러운 이양은 현직과 당선인 두 대통령이 힘을 합해 국민에게 던지는 통합의 메시지다. 이는 단순한 국정업무 인수인계 이상의 상징성을 갖는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정당을 불문하고 현직 대통령이 당선인에게 개인적 편지를 보냄으로써 협력의 관행을 제도화했다. 임기를 마치며 국익 차원에서 경험한 개인적 훈수가 녹아 있으며 협력을 위한 전향적 자세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정치, 협치와 ‘합의 민주주의’
둘째, 정치 영역이다. 다수결 민주주의는 다수가 지배하고 소수가 반대하는 구조다. 적어도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 민주주의 측면에서 완전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소수의 선호가 다수에 의해서 이성적으로 고려된다면 ‘국민을 위한(for the people)’ 민주주의는 작동한다고 하겠다. 바로 협치가 필요한 이유다. 대통령제는 협치가 제도적으로 어렵다. 대통령 선거로 단번에 정부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내각책임제에서는 연정을 통해 정부를 구성하면서 정당 차원의 협치, 즉 ‘합의 민주주의’를 이룩한다. 하지만 영국과 같이 내각책임제지만 연정이 드문 경우도 있다. 이는 양당체제 때문이다. 영국을 ‘웨스트민스터 민주주의’라고 따로 부르는 이유다. 대통령제에 양당제가 겹치게 되면 연정은 더더욱 어렵다. 미국이 이런 경우이며 우리도 기본적으로는 이에 해당한다.정당 차원의 합의민주주의가 쉽지 않은 영국, 미국, 한국 모두는 제도적으로 승자독식의 성격을 갖고 있다. 승자독식은 패자의 대표성이 전면 차단되는 비민주적 측면이 있으며, 이는 사실 정치적 갈등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정부 구성 단계에서 초당적 인사로 협치를 모색하는 것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존 바이든 대통령까지 14명의 대통령이 116명에 이르는 다른 당의 인사를 장관 또는 행정부 요직에 임명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내각에서 일하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유임시켰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아프가니스탄 문제 해결을 위한 적임자가 필요했고, 게이츠 또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신의 일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게이츠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국방장관으로서 정당이 다른 두 대통령과 일하게 됐다. 오바마의 제안은 당시 안보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었지만 이는 화해와 통합을 위한 새 대통령의 선의로도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협치는 미국 정당체제가 가지는 여유로움에 기인한다. 미 의회에서 법안 의결 시 자기 당 법안에 대한 소속 의원의 지지는 대략 70% 정도에 그친다. 의원들이 우선순위는 각자 다르겠지만 의정 활동에서 지역구 이익, 정당 이익, 국익 등을 동시에 고려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에 비해 ‘닫힌’ 정당체제를 갖고 있다. 중앙당의 공천, 항시적 당 조직, 집권적 당 지도부, 결속력이 강한 당원 등을 중심으로 정당이 운영된다. 이 같은 운영 방식은 경직화된 정당 관계를 초래한다. 우리는 제도와 조직이라는 단어를 구분해서 사용한다. 우리 사회를 장기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기본가치가 반영된 것을 제도라 하고, 그렇지 않고 수단적 속성을 가진 것을 조직이라고 한다. 정권 획득의 수단이라는 성격이 지나치게 강조된 한국 정당은 제도보다 조직의 성향이 강하고, 결국 정치 양극화를 증폭시킨다.
다행히 우리에게 한 가지 희망이 남아 있다. 우리 사회는 인종, 언어, 종교에 대한 원초적 균열이 두드러지지 않은 동질사회라는 것이다. 우리는 K문화의 성공에 다 함께 열광한다. 문화적 동질성 때문이다. 많은 민주주의 국가는 원초적, 사회적 균열을 극복하기 위해 고도의 정치적 노력을 하지만 늘 만족스럽지 않다. 사실 우리는 마음만 잘 먹으면 협력이 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정당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
국가, 전문가주의와 ‘역량강화 민주주의’
셋째, 국가 영역이다. 국가 정책은 갈등을 조장하거나 통합할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적지 않은 국민이 정책 결정이 정파나 이념에 의해 왜곡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많은 갈등은 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해결은 간단하지 않다.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위험하다. 포퓰리즘이 대표적인 예다.19세기까지 영국, 미국, 프랑스에서는 선거 후에 정치적 배려로 정부 일자리를 챙겨주는 소위 ‘정치적 후견제’가 뿌리 깊게 자리했다. 관행은 자성적 개혁으로 근절됐다. 후견 관행을 국가 후진성의 근본요인으로 간파하고, 국가 관료는 시험을 통해 일정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개혁을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20세기에 들어와서 전문가주의가 관료제에 정착됐다. 전문가주의는 미국의 실용주의와 어우러지면서 몇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첫째, 전문가주의는 정책 합리성을 바탕으로 공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특화된 정보와 지식을 통해 문제 해결 중심으로 업무수행 범위가 확장됐다. 셋째, 행정 능력의 향상은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가의 업적으로 이어졌다. 결국 행정 관료는 민주주의 원칙에 의해 대통령에 복속됐지만, 대통령도 자신의 업적을 위해 전문가주의에 의존한 것이다. 전문가주의란 결국 소극적인 정치적 중립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공익과 국익을 추구해 정책의 정치적 왜곡 내지는 이용을 방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관료는 일본 관료와 비슷하게 고시를 통해 관료를 선발하면서 업무수행 행태는 전문적 역량보다 관리적 역량이 중심이 됐다. 그 결과 행정 수반에 대한 복속도가 매우 높은 가운데, 정책의 정치적 판단에 대해 조정, 수정, 대안 제시를 하는 전문성, 즉 정책의 완결성을 높이는 내부 기제는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이 필요 이상으로 크게 요동치는 이유다.
사회, 공동선과 ‘자기제한 민주주의’
넷째, 사회 영역이다. 국민 통합은 오래된 숙제다. 독일은 19세기 게르만 민족주의로 통일 분위기를 조성했다. 건국부터 이민자들에 의해 시작돼 민족이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었던 미국은 애국이라는 단어로 통합을 기도했다. 하지만 민족주의나 애국주의 같은 외피적 처방은 내부 정치 경합이 유발한 분열을 극복하기에는 부적합하다.현재 필요한 것은 어떻게 정치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조정을 통해 통합을 이룩하는가다. 우선 ‘공동선’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숙의민주주의’의 핵심이다. 하지만 토론마저 시작하기 힘든 상황, 또는 토론을 하면 할수록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는 통합 자체가 중요한 공동선이 됐음을 암묵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19세기 노예제에 대한 언급을 터부시하는 ‘언급 자제’ 규칙이 미 의회에 등장했다가 표현의 자유 침해 이유로 사라졌다. 하지만 홈스라는 정치학자는 대립이 첨예한 현대 다원적 민주주의에서 언급 자제는 민주주의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데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무리한 주장, 상대방을 자극하는 언동은 삼가면서 타협이 쉬운 분야에서 합의를 모색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살려내는 길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 시민사회에서의 화해와 통합은 정치화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정치가 다수와 소수, 또는 적과 동지로 분열하는 기제로 작동한 것이다. 정치의 속성에는 원래 경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경합은 정치 영역에 가둬져야 하고, 그때 시민사회는 보다 자유롭고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소모적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소통에 있어서도 자제의 요소가 필요하고, 정치 영역이 시민사회를 ‘식민화’하지 못하게 제한적이어야 한다. 통합을 위해서 ‘자기제한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정치를 너무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정치가 지나치게 격화된지도 모른다. 정치학자 엘스터는 예술, 과학, 운동, 체스와 같이 정치도 참여하는 그 자체가 목적일 수가 있다고 했다. 오늘은 졌지만 내일은 이길 수 있으며, 오늘은 이겼지만 내일은 질 수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면서 정치는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증명해내고 있는 것이다.
■ 김상준은
비교정치, 국제정치, 정치경제 영역에서 정치 메커니즘을 비교 분석하는 학자이며, 동아시아 국가의 민주주의 업그레이드에 관심을 갖고 있다. 연세대, 일본 게이오대, 미국 시카고대에서 비교정치, 일본정치, 국제정치, 정치경제를 공부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 대외협력처장과 행정대학원장을 지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비교민주주의, 사회 이중구조, 메커니즘의 정치학, 일본 정치, 동북아 국제관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