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취임 사절로 온 왕치산 중국 국가부주석의 발언을 보면 이런 외교 결례가 어디 있나 싶다. 그는 윤 대통령을 예방, 공개된 자리에서 “중국 측은 앞으로 양국 관계 발전에 대해 몇 가지 건의사항이 있다”며 5개 항을 열거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것은 ‘민감한 문제의 타당한 처리’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철수 요구를 이런 식으로 표현해 왔다. 양국은 2017년 10월 사드 갈등 극복과 관계 복원에 합의했고, 우리 정부는 ‘봉인’됐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말뿐, 이후 시진핑 주석은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한국이 계속 이 문제를 타당하게 처리하길 희망한다”고 했고, 리커창 총리도 “민감한 문제를 잘 처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하는 등 줄기차게 압박성 발언을 이어왔다. 이번엔 왕 부주석까지 윤 대통령 면전에서 같은 말을 되풀이한 것이다. 축하하러 온 건지, 협박하러 온 건지 알 수가 없다.

시 주석이 왕 부주석을 통해 윤 대통령에게 방중 초청 의사를 전한 것도 그렇다. 이게 뭐가 문제냐고 생각할 수 있으나 상호주의가 엄격하게 적용되는 외교에선 그렇게 선의로만 볼 수 없다. 시 주석은 2014년 7월 이후 한 번도 한국에 온 적이 없는 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듬해 9월 방중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두 차례 중국을 찾았다. 시 주석과 중국 고위 당국자들은 여러 번 시 주석의 방한 의사를 나타냈지만, 매번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은 미국을 견제할 필요가 있을 때 시 주석의 방한을 흘려 한·미 간 갈라치기를 위한 외교 카드로 활용해온 인상도 짙다. 정작 중국 관영매체들이 시 주석의 방중 초청 사실은 빼고, ‘민감한 문제’만 부각해 보도한 것을 보면 중국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읽을 수 있다.

물론 중국이 한국을 이렇게 만만하게 본 데는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크다. 문 전 대통령은 ‘혼밥 굴욕’까지 당했음에도 추가 배치 금지 등 ‘사드 3불(不)’까지 약속하고 ‘중국은 큰 봉우리’라고 고개를 숙이며 시 주석 방한에 매달렸다. 그럴수록 중국은 방공식별구역(KADIZ) 침범, 서해공정 등 협박을 일삼았고 요구사항만 늘렸다. 시 주석의 초청에 대해 윤 대통령이 사의를 표하면서도 “시 주석의 방한을 고대한다”고 한 것은 적절했다. 중국에 대해 따질 건 따져 기울어진 외교의 판을 곧게 펴길 바란다. 중국의 사드 배치 반대 철회, 한한령(限韓令) 해제 등을 윤 대통령의 방중 기준으로 삼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