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고물가를 비롯해 국내외 경제 여건이 계속 어두워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를 비이성적으로 삼켜버린 올해 두 차례 선거 이후 경제 상황은 직시하기가 두려울 정도다. 생산·소비·투자가 함께 위축되는 경제는 썰물 뒤 거친 바닷가를 연상시킨다. “태풍 권역에 우리 마당이 들어가 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안마당 태풍론’이 과장이 아니다.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들도 더 긴장하면서 이제는 필요한 행동에 돌입해야 한다. 우리 경제를 실질적으로 견인하는 기업의 애로와 고충, 실상은 충분히 파악했으리라고 본다. 지난주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경제 6단체장 간담회도 그런 자리였다. 추 부총리는 벤처기업인들과도 따로 만났다.

정부의 경제팀장이 경제·기업계 리더와 만나 머리를 맞대고 산업 활로를 모색하는 것은 좋다. 정부를 향한 다양한 지적과 요구를 직접 듣고 대응 방향을 설명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하지만 행사를 위한 행사가 돼선 곤란하다. 제대로 듣고 함께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각자 자기 목소리만 내고 성과도 없이 헤어지는 보여주기식의 뻔한 민·관 간담회가 과거엔 너무 많았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경제단체마다 정부와 국회에 수없이 제출한 정책 제안과 규제개혁 건의서가 쌓여 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건의·요구 내용이 바뀔 것도 없다. 세제와 금융지원, 입법·행정 규제 혁신에 대한 산업계의 기대가 커졌을 뿐 대정부 요구 리스트는 그대로다. 기업을 옥죄고 투자를 가로막는 낡은 행정의 틀에 아직 변화가 없는 까닭이다. 경제단체장 간담회에서 추 부총리가 들은 법인세·가업승계 세제 개편, 주 52시간 근로제 개선,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준조세화하는 각종 인증제와 환경규제 풀기, 일부 대기업 총수 사면 등만 해도 언제 때부터 나온 과제인가. 세제와 자금·금융 지원, 행정규제 완화의 3종 세트가 필요한 벤처지원책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방법론을 몰라 스타트업 육성을 못하는 게 아닐 것이다.

새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대통령 선거와 인수위 활동을 거치며 한 약속도 그대로 아닌가. 더구나 지금은 대통령도 태풍권에 들어섰다고 진단할 정도로 위기 국면이다.

머뭇머뭇하다가, 이벤트 모양새나 신경 쓰다가 실기하면 다 소용없다. 가령 국정과제에 있는 ‘반도체 시설투자 인센티브’에서도 기재부는 보조금 지급을, 산업통상자원부는 세액공제를 주장한다고 들린다. 반도체산업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서 국가적 전략 카드라면 양 부처 지원안 모두 시행하면 될 일 아닌가. 이달 중 발표되는 ‘경제정책 방향’도 그래서 주목된다. 노동·연금·교육 개혁, 규제 혁파, 부동산 세제 정상화, 재정건전화 방안이 담길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그럴듯한 표현의 당위론 나열이 아니라 ‘무엇을 언제까지 어떻게 바로 잡겠다’는 구체적 실행안이다. 지체된 정의만큼이나 뒤늦은 대책도 소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