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길곤의 데이터로 본 세상] '다르게 보기'와 정책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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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불편한 시선이 '민주화 원동력'
다양한 시각, 대안과 정책 혁신의 원천
다른 생각 경청할 때 통합의 시대 열려
고길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다양한 시각, 대안과 정책 혁신의 원천
다른 생각 경청할 때 통합의 시대 열려
고길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가 세간의 화제이다. 어떻게 보든지 ‘우영우’는 ‘우영우’라는 자기 정체성의 선언일 수 있는 이 말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일을 어떻게 보든지 결론은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책학에서 상당히 위험한 생각으로 간주된다. 동일한 정책문제를 어떤 시선을 가지고 보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판단도 시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1973년 완공됐다. 당시 오페라하우스는 예정 공사기간이 10년 이상 초과했고, 공사비도 원래 금액보다 20배나 증가했기 때문에 실패한 사업이라고 비난받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고 호주의 상징적인 건물이 됐다. 실패한 정책이 성공한 정책이 된 것이다. 이렇듯 정책의 성공과 실패 판단은 양면성이 있는데도 과거의 정책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심각한 정책오류다.
거꾸로 본다는 것은 다르게 본다는 것이지 꼭 반대로 본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권력자는 자신과 다른 시선을 가진 목소리를 불편해한다.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출근길 약식회견(doorstepping)을 했는데,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사용했다고 비판받는다. 선거를 도운 청년을 9급 자리에 취업시켰는데 여론은 사적 채용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친한 민간인 지인을 동반해 해외 출장 한 번 다녀왔는데 국기문란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인사권자가 장관을 임명했을 뿐인데 인사 대참사라는 소리도 나온다. 권력자는 이전에도 다 있던 일인데 ‘왜 그러지?’라고 억울해할 수 있을 것이고 자신의 시선을 고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불편한 시선이 국민이라는 주권자의 시각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권력에 불편한 시선이 독재에 저항하는 힘의 원천이었고 오늘날 한국 민주화의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대담한 정치인이라도 민심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백성은 물과 같아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가라앉히기도 한다”는 공자의 지혜를 경청한 권력은 국민의 지지를 받았고, 그렇지 못한 권력은 오만함에 스스로 무너졌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시선은 혁신의 원천이기도 하다. 투자에 실패한 청년이 지게 된 이자와 채무를 ‘면제’해주는 정책을 보자. 이 정책을 면제의 시각에서 보지 않고 회생의 ‘기회’를 주는 관점에서 새로 설계해 볼 수도 있다. 즉 혜택받은 금액을 국가에 대한 채무로 기록해뒀다가 재기에 성공한 뒤 그 청년이 국가에 세금을 내면 그 세금의 일정 비율만큼 채무를 줄여주는 것이다. 국가에 성실히 세금을 납부하면 채무를 면제받는다는 점에서 조금은 더 공정한 정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다른 예를 들어보자. 지역화폐 효과가 없으니 정부가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선언하기보다는 지방자치단체 스스로가 지역공동체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역화폐 방안을 만들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정책은 정부의 시선을 고집하기보다는 각 경제주체나 지자체의 시선을 존중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정책혁신 전략이다.
정부는 인플레이션, 환율 상승, 코로나 재확산, 재정적자, 낮은 정부 지지율 등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이 모든 문제를 정부 혼자 풀 수는 없다. 때로는 정책 대상자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힘을 키우는 정책철학을 채택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다양한 대안과 혁신의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나머지 반쪽은 만족시키기 어렵다. 다른 시각을 갈등으로 보지 않고 더 좋은 생각이 서로 경쟁하는 과정으로 사고를 전환한다면 조금이라도 포용적인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현대 민주주의를 다양한 시선과 담론의 경쟁 과정으로 본다면 정책담당자는 더 좋은 정책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자폐인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우영우를 바라보자. 그녀를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개성을 가진 사람으로 바라볼 때 그녀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정책혁신은 과거의 부정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한 번쯤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거꾸로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진 사람의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철학의 전환이 있을 때 그렇게도 국민이 열망하는 분열의 시대를 넘어 통합과 혁신의 시대가 가능하지 않을까?
정책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판단도 시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1973년 완공됐다. 당시 오페라하우스는 예정 공사기간이 10년 이상 초과했고, 공사비도 원래 금액보다 20배나 증가했기 때문에 실패한 사업이라고 비난받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고 호주의 상징적인 건물이 됐다. 실패한 정책이 성공한 정책이 된 것이다. 이렇듯 정책의 성공과 실패 판단은 양면성이 있는데도 과거의 정책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심각한 정책오류다.
거꾸로 본다는 것은 다르게 본다는 것이지 꼭 반대로 본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권력자는 자신과 다른 시선을 가진 목소리를 불편해한다.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출근길 약식회견(doorstepping)을 했는데,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사용했다고 비판받는다. 선거를 도운 청년을 9급 자리에 취업시켰는데 여론은 사적 채용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친한 민간인 지인을 동반해 해외 출장 한 번 다녀왔는데 국기문란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인사권자가 장관을 임명했을 뿐인데 인사 대참사라는 소리도 나온다. 권력자는 이전에도 다 있던 일인데 ‘왜 그러지?’라고 억울해할 수 있을 것이고 자신의 시선을 고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불편한 시선이 국민이라는 주권자의 시각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권력에 불편한 시선이 독재에 저항하는 힘의 원천이었고 오늘날 한국 민주화의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대담한 정치인이라도 민심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백성은 물과 같아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가라앉히기도 한다”는 공자의 지혜를 경청한 권력은 국민의 지지를 받았고, 그렇지 못한 권력은 오만함에 스스로 무너졌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시선은 혁신의 원천이기도 하다. 투자에 실패한 청년이 지게 된 이자와 채무를 ‘면제’해주는 정책을 보자. 이 정책을 면제의 시각에서 보지 않고 회생의 ‘기회’를 주는 관점에서 새로 설계해 볼 수도 있다. 즉 혜택받은 금액을 국가에 대한 채무로 기록해뒀다가 재기에 성공한 뒤 그 청년이 국가에 세금을 내면 그 세금의 일정 비율만큼 채무를 줄여주는 것이다. 국가에 성실히 세금을 납부하면 채무를 면제받는다는 점에서 조금은 더 공정한 정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다른 예를 들어보자. 지역화폐 효과가 없으니 정부가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선언하기보다는 지방자치단체 스스로가 지역공동체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역화폐 방안을 만들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정책은 정부의 시선을 고집하기보다는 각 경제주체나 지자체의 시선을 존중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정책혁신 전략이다.
정부는 인플레이션, 환율 상승, 코로나 재확산, 재정적자, 낮은 정부 지지율 등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이 모든 문제를 정부 혼자 풀 수는 없다. 때로는 정책 대상자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힘을 키우는 정책철학을 채택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다양한 대안과 혁신의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나머지 반쪽은 만족시키기 어렵다. 다른 시각을 갈등으로 보지 않고 더 좋은 생각이 서로 경쟁하는 과정으로 사고를 전환한다면 조금이라도 포용적인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현대 민주주의를 다양한 시선과 담론의 경쟁 과정으로 본다면 정책담당자는 더 좋은 정책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자폐인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우영우를 바라보자. 그녀를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개성을 가진 사람으로 바라볼 때 그녀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정책혁신은 과거의 부정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한 번쯤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거꾸로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진 사람의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철학의 전환이 있을 때 그렇게도 국민이 열망하는 분열의 시대를 넘어 통합과 혁신의 시대가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