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639조원 규모의 국회 상임위원회별 내년도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대표 공약과 정부 주요 국정과제 관련 예산을 줄줄이 삭감하고 있다. 반면 이재명 대표의 역점 사업 예산은 다수의 힘으로 대거 증액을 밀어붙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 심사도 거야(巨野)의 힘자랑 무대로 삼으려는 듯하다.

민주당의 주요 칼질 대상은 ‘윤석열표 예산’이다. 용산공원 조성(303억원)과 영빈관 신축(497억원), 외교 네트워크 구축(21억7000만원), 시설 관리(54억6000만원), 청와대 개방 및 활용(59억5000만원) 등이다. 이미 대통령실을 이전한 마당에 관련 예산을 뭉텅이로 잘라내려는 것은 정권 뒷다리부터 잡고 보자는 몽니로 비친다. 특별한 기준 없이 ‘용산의 용’자만 들어가도 모조리 칼질 대상이란 얘기까지 나올 정도이니 예산 심사가 이렇게 막무가내여도 되나 싶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공약 예산은 속속 되살리고 있다. 지역화폐 발행 지원(5000억원)과 기초연금 지급(1조6000억원), 쌀값 안정화 지원(1959억원), 재생에너지 지원(3281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각 상임위에서 민주당 주도 예산이 8조원 넘게 증액됐다. 삭감액(약 1조2000억원)의 6.5배 이상이다. 상임위 심사가 덜 끝났는데도 이렇다. 이 대표는 ‘3대 민생회복 프로젝트’를 위해 1조2000억원을 예산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예산 심사 막판에 끼어들기 마련인 지역 민원성 쪽지 예산까지 더하면 증액 규모는 훨씬 클 것이다. 여당마저 ‘민생·약자’ 지원 명목으로 2조원을 늘리겠다고 한다. 나랏빚이 1068조원이 넘는 상황에서 재정이 거덜 나든 말든 모두 표심만 바라보고 있다.

각 상임위를 거친 예산안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최종 심사가 이뤄진다. 어제부터 감액·증액을 결정하는 특위 예산안조정소위원회가 가동을 시작했다. 예산안을 늘리는 것은 헌법상 정부 동의 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건전재정 기조에 맞게 무책임한 예산 증액 요구엔 당당하게 제동을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