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넘게 끌던 ‘반도체특별법(K칩스법)’이 결국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수도권 반도체 학과 증원이 무산된 데 이어 기대했던 세액공제마저 찔끔 늘어나는 시늉만 내며 반쪽짜리로 전락했다. 반도체·배터리·바이오(백신) 등 국가첨단전략산업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현행 6%에서 8%(대기업 기준)로 올리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야가 의견차를 못 좁힌 데다 세수 감소를 우려한 기획재정부의 반대가 완강해 지난 7월 발표된 세제개편안 내용이 그대로 채택됐다. 삼성전자 등이 반도체 시설에 10조원을 투자하면 세금에서 빼주는 금액이 기존 6000억원에서 8000억원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세액공제 폭이 여당(20%)은 물론 야당(10%) 안보다 후퇴해 비판이 커지고 있다. 기재부는 여당 안이 통과될 경우 2024년 법인세 세수가 2조6970억원 감소할 것으로 걱정하며 공제폭 확대에 반대했다. 반도체 등에 대한 투자가 수출과 고용은 물론 기업 실적을 개선해 결과적으로 세수 기반을 넓힌다는 건 당초 지원책을 논의할 때부터 정책 논거로 제시된 것인데, 이제 와서 세수 운운하는 기재부의 단견은 납득하기 어렵다. 여당 반도체특위 위원장인 양향자 의원(무소속)이 “관료들의 눈에는 위기 상황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한탄한 것도 당연하다.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아온 거대 야당은 차치하더라도 반도체산업 육성을 입이 부르트도록 외치던 여당이 무슨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

반도체 전쟁이 개별 기업 간 싸움을 넘어 국가 간 전면전이 된 지 오래다. 미국은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 폭을 25%로 높였고 대만은 반도체 연구개발비 세액공제율을 25%로 올리기로 했다. 중국은 반도체 육성에 2025년까지 187조원을 쏟아붓기로 했다. 극심한 불황에 반도체업계가 생존 경쟁에 들어간 상황이어서 정부 차원의 지원이 더욱 절실하다. 미국 마이크론이 인력 10%를 줄이고 인텔이 정리해고 등으로 100억달러를 절감하기로 했지만, 한국 대기업들은 구조조정은 엄두도 못 내 무방비 상태다. 삼성전자의 올 4분기 반도체 사업부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83% 급감하고, SK하이닉스는 1조원대 적자를 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경쟁국들이 세액공제 확대에 더해 막대한 보조금까지 뿌리며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는데, 고작 8%로 경쟁이 가능하겠나. 반도체는 투자 적기를 놓치면 주도권을 잃는 타이밍 산업이다. 여야정은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다시 협상에 나서 최소한 경쟁국 수준으로 세액공제 폭을 끌어올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