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가 ‘적정 보험료율 및 적정 연금지급률 확보’를 강조한 보고서 초안을 국회에 보고했다. 보고서는 어느 정도가 ‘적정’인지 구체적인 목표 수치를 적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의 고통 분담보다 ‘더 내고 더 받는’ 방식에 방점을 둔 듯하다.

내는 돈(보험료율)과 받는 돈(소득대체율)을 동시에 높여 가입자 반발을 완화하자는 게 자문위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얼마를 더 내고, 나중에 얼마를 더 받느냐의 문제는 정치적 흥정의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당초 연금개혁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연금의 지속 가능성과 국민 노후생활을 보호한다는 양쪽 명분을 동등한 비중으로 살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둘 중 하나를 양보해야 한다면 국민 노후생활 쪽인데, 벌써부터 ‘더 내고 더 받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공언한 여야가 연금 수급자에게 고통 분담을 호소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더욱이 ‘더 받는’ 방식은 지속 가능성뿐만 아니라 세대 간 형평성 제고라는 연금개혁의 대원칙에도 부합하기 어렵다. 당장 ‘더 받는’ 수혜는 장년층이 누리는 반면, ‘더 내는’ 고통은 젊은 세대가 부담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민연금 재정추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출산율 급락 등의 요인을 감안하면 연금 고갈 시점을 2057년으로 내다본 2018년 재정추계는 당장 내년에 새롭게 발표될 추계에서 대폭 수정될 가능성이 크다. 적자·고갈 시점이 훨씬 앞당겨질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선진국보다 소득대체율이 낮아 언젠가 올려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건 급한 불을 끈 뒤의 문제다. 연금폭탄이 째깍째깍 돌아가는 지금은 최소한 ‘동결’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본다.

민간위는 이달 말 국회에 제출할 최종안은 ‘미정’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전문가 16명으로 구성된 민간위가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을 주문해 온 정치권 압박에 밀려 미봉책으로 기울어졌다는 우려가 커진다. 국민에게 연금의 실상, 개혁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고통 분담 내지는 기성세대의 양보가 불가피하다는 상황을 솔직하게 알리는 것이 우선 아닌가. 민간위가 매진할 일은 정치권 눈치보기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연금개혁안을 만들고 국민 공감대를 확산하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도 이번 기회에 20년, 30년 가는 개혁안을 마련하는 데 좌고우면하지 말아야 한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이럴 거면 차라리 해체하자’는 주장까지 나오는 판이다. 조삼모사(朝三暮四) 같은 장밋빛 개혁안으로 소중한 기회를 낭비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