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소멸 위기 지방 살리는 日 도서관
일본은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8명 배출했다. 미국을 넘어 세계 1위다. 일본이 낳은 건축 거장들이 설계한 도서관은 그래서 화제가 된다. 지난해 7월 개관한 이시카와현립도서관은 최근 일본에서 가장 뜨는 건축물이다.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라는 찬사를 받는 이 도서관은 4층까지 뻥 뚫린 높이 15m, 둘레 160m의 공간을 원형으로 지었다.

30년 새 도서관 1000곳 늘어

가장 공들인 부분은 책상과 의자다. 적어도 50년은 써야 하고, 긴 시간 몸을 맡기는 대상인 만큼 유명 가구 디자이너 가와카미 모토미, 아르네 야콥센 등의 작품으로 채웠다. 500여 개 열람석 가운데 의자와 소파 종류가 100여 가지에 달한다. 개관 5개월 만에 이시카와현의 예상보다 두 배 많은 53만 명이 도서관을 찾았다.

국력도 경제력도 내리막길을 걷는 일본이지만 도서관 인프라를 보면 기초 과학, 순수 문학 강국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다. 일본에는 2021년 말 현재 3316개의 공립 도서관이 있다. 1995년 2297개였던 도서관 수가 30년 장기 침체를 겪는 와중에도 1000개 이상 늘었다. 인구 112만 명의 이시카와현이 도서관을 짓는 데 6년간 150억엔(약 1431억원)을 썼다. 지난해 이시카와현 예산이 5703억엔이었으니 상당한 액수다.

일본인이 으리으리한 도서관이 늘어나는 것을 마냥 반길 리는 없다. 30년째 월급은 안 오르는데 세 부담만 계속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의 도서관은 경제 논리에서도 비판론자들을 납득시키고 있다. 도서관이 소멸 위기를 맞은 지방 경제를 되살리고 인구 감소를 늦추는 수단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시카와현립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고 빌리는 장소가 아니라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세워진 ‘체재형 도서관’이다. ‘사일런트 룸’을 제외하고는 어디서나 자유롭게 대화하면서 책을 볼 수 있다. 도서관에선 조용해야 한다는 심리적 장벽을 깨는 시도다. 이시카와현은 일본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아오는 미술관인 ‘21세기 미술관’, 케이크 상자를 형상화한 ‘우미미라이 도서관’ 등 신흥 건축물의 집결지다. 이 덕분에 ‘워케이션(원하는 곳에서 업무와 휴가를 동시에 하는 근무 형태)’의 성지로 떠오르는 효과도 누리고 있다. 가몬 요시타카 이시카와현 문화진흥과 전문위원은 “이시카와현립도서관은 지역 축소를 막기 위한 최후의 도전”이라고 말했다.

지방소멸 막는 문화의 힘

경제 효과가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된 도서관도 적지 않다. 인구 5만 명의 소도시 다케오는 2013년 대형 서점 쓰타야를 운영하는 컬처컨비니언스클럽(CCC)에 도서관 운영을 위탁했다. 지방자치단체가 공립 도서관 운영을 민간 기업에 맡긴 첫 사례였다. 도서관 겸 서점으로 재단장한 다케오도서관이 개장하자 2011년 25만 명이던 연간 방문객이 2013년 92만 명으로 3.6배 늘었다. 다케오 지역 숙박시설 가동률은 2배, 음식점 매출은 1.2배 증가했다. 2015년 다케오시는 “지난 2년간 총 36억엔의 경제 파급 및 홍보 효과를 올렸다”고 밝혔다.

인구 감소와 경제 쇠퇴로 인한 소멸을 막는 최고의 대책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일자리다. 하지만 일본 구석구석 이동통신사 기지국처럼 자리잡은 도서관들은 문화의 힘 또한 쇠락을 늦추는 대안임을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