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제 징용 문제에 해법을 내놨다. 어제 외교부가 국회 토론회에서 공식화한 것은 일본 기업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이 제3자로부터 배상금을 변제받는 방안이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수혜를 본 국내 기업으로부터 기부받아 피고 기업인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을 대신해 지급하는 방식이다. 피고 기업들이 판결 이행을 꺼리고 있고, 압류할 자산이 국내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꺼낸 일종의 고육책이다.

정부가 어렵사리 이런 방안을 마련했지만 난관이 적지 않다. 포스코가 재단에 기부한 40억원과 민간 기부금 등을 활용할 수 있으나 피고 기업들이 지원금을 기부하지 않는다면 배상의 진정성이 퇴색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피고 기업들의 기부를 이끌어낸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여전히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또한 정부안에는 현실적 어려움을 이유로 일본 정부와 기업의 사죄, 직접 배상이 빠져 있어 피해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한쪽의 뜻만 일방적으로 관철하기 어려운 게 외교 현실이다. 정부안이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지만, 피해자들도 마냥 외면할 때가 아니다. 고조되는 북핵 위협과 미·중 패권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급변하는 글로벌 정세 속에서 문재인 정부가 피해자 중심주의에만 매달리다 파탄으로 몰아간 양국 관계 복원은 한시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정부가 징용 문제 해결을 서두르는 것도 이런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성의 있는 자세를 보이길 바란다. 청구권 협정으로 끝났다는 외골수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이웃 국가에 불행을 준 역사에 대해선 가해자의 부단한 사과와 해결 노력이 필요하다. 자유 진영 결속이 더 없이 요구되는 동북아시아 정세 속에서 두 나라가 반목을 지속하면 일본 국익에도 결코 도움이 안 된다. 한·일 모두 죽창가식 반일, 혐한(嫌韓) 몰이 등과 같이 과거사 문제를 더 이상 국내 정치에 악용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