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의 총리 불신임안이 부결되면서 프랑스 연금개혁안이 극적으로 마지막 관문을 넘었다. ‘연금 수령 개시 시점(정년) 2년 연장’이 핵심인 연금개혁법 통과 과정은 포퓰리즘을 이겨내고 개혁을 관철하는 일의 험난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연금개혁안을 지켜냈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입은 정치적 타격과 감당해야 할 후폭풍은 막대하다.

우선 국정 지지율이 20%대로 곤두박질쳤다. 국민 60~70%가 반대하는 개혁을 강행한 탓에 큰 정치적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하원 통과가 힘들 것’이란 예상에 표결 없이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헌법 조항(긴급법률 제정권)을 발동하는 바람에 의회와의 대치도 험악해졌다. ‘초강력 대응’을 공언한 노조와 힘겨운 싸움도 벌여야 한다. 노조는 “마크롱은 세기의 파괴자”라며 당장 내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한다.

정치 생명을 건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개혁 행보는 비슷한 처지의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프랑스 연금은 올해부터 적자전환해 2030년 135억유로(약 19조원)의 손실이 예상되는 절박한 상황이다. 2007년 이후 16년째 국민연금 개혁이 좌절된 한국이 머지않아 맞닥뜨릴 예고된 미래다. ‘표’만 생각하는 여소야대 의회와 과격 노조의 발목잡기도 판박이다. ‘의회 패싱’에 맞서 프랑스 야당이 제출한 내각 불신임안은 적잖은 여당 의원들의 반란으로 불과 9표 차로 부결됐다. 한국에서 연금개혁이 시도될 때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일이다. 대선 과정에서 모처럼 연금개혁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졌음에도 8개월째 허송세월 중인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그 방증이다. 특위는 얼마 전 모수개혁 대신 구조개혁을 선언했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도 결정하지 못하면서 연금 통합 등을 추진하겠다니 믿기 어렵다.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한 연금개혁 포기 선언이 아닐지 우려스럽다.

프랑스 연금개혁에 가장 큰 교훈은 정치 지도자의 용기다. 프랑스 국민은 격렬하게 반대하지만 제3자 시각에서 보면 마크롱의 선택은 불가피했다. 연금개혁 실패 시 감당하기 힘든 재정적·경제적 후폭풍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독일에 기여한 ‘슈뢰더 개혁’처럼 마크롱의 결기도 그의 정치적 운명과 무관하게 프랑스를 치명적 위협으로부터 지켜낼 것이다. 소모적인 친일 논쟁뿐인 한국 정치권의 대오각성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