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메타버스에서 만났다, 우리
“여러분, 이제 모둠 활동을 시작할 거예요. 활동이 끝나면 다시 이 자리에서 마무리합니다. 자, 모둠별로 이동하세요.” 선생님의 말씀에 일부는 창문 가까운 곳으로, 일부는 교실 뒤편으로, 또 게시판 앞으로 부지런히 움직인다. 정확하게 말하면 부지런히 마우스를 움직여 아바타를 옮긴다. 내 아바타가 다른 아바타들과 거리가 멀어지면 소리도 멀어지고, 가까워지면 소리도 크게 들린다. 선생님은, 아니 선생님 아바타는 각 모둠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오류도 수정해 준다. 이 흥미진진한 시간이 흐른 뒤 흩어졌던 학생 아바타들은 교탁이 있는 중앙으로 모여든다. 머리 꼭대기에 실시간 화상 강의에서 봄 직한 자신의 영상을 하나씩 달고 말이다. 아바타 덕분에 실시간 화상 강의보다 훨씬 실감 나고 몰입감도 높다.

하굣길에는 360도 가상현실(VR)로 생생하게 펼쳐지는 찜질방과 만화카페에서 한국의 생활문화를 체험하고, 휘모리장단에 맞춰 리듬 게임을 해본다. 승부욕을 자극하는 방 탈춤 게임과 어휘 퍼즐 대국을 통해 한국어 실력을 겨룰 수도 있다. 때마침 야외 공연장에서 퓨전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면 얼른 그곳으로 달려가 이 봄을 즐길 수도 있다. 이 모든 장면은 작년 시범 운영 당시, 세계 123개국에서 온 4600명이 넘는 방문자와 560여 명의 외국인 학생들이 가상과 현실이 만나는 메타버스 세종학당 캠퍼스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즐겼던 모습이다.

학생들이 무엇보다도 으뜸으로 여긴 것은 수업 후 광장으로 달려간 일이란다. 가장 많은 아바타로 북적이는 곳이다. 거기서 한국인 도우미나 다른 문화권 학습자를 만나 서로의 문화와 경험을 자유롭게 소통하고 나눈다. 실제로는 멀리 있지만 아바타를 통해 가상의 한 공간에 모일 수 있다. 우리의 현실 세계가 확장되는 순간인데, 이쯤 되니 메타버스를 ‘확장 가상세계’라는 순화어로 내놓은 국립국어원의 혜안에 손뼉이 쳐진다.

이곳 메타버스 캠퍼스에서 외국인 학생들이 소통을 즐기고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하다. 닐 스티븐슨의 <스노 크래시>가 세상에 나온 1992년의 메타버스는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3차원(3D) 그래픽, 증강현실(AR), 5세대(5G) 통신과 곧 등장할 6G 같은 미래 기술을 업고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가 연결된 오늘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소통 방식의 진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한 통신사에서 홀로그램 국제회의가 있었다. 증강현실로 구현된 지금까지의 메타버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최고의 색감도 보였단다. 머지않아 학습자들은 홀로그램 한국어 선생님들을 메타버스 한국어 교실에서 만날 것이다. 그리고 한층 진화된 소통과 상호작용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