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국가 의전 서열은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에 이은 6위다. 그다음이 여당과 야당 대표다. 중앙선관위 사무총장과 상임 선관위원은 장관급 예우를 받는다. 조직도 방대하다. 17개 시·도와 249개 시·군·구에 둔 사무실에서 약 3000명의 직원이 각종 국가선거와 위탁선거를 관리한다. 1년 예산만 4000억원에 달한다. 업무에 비해 과도한 측면이 있지만, 그래도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라고 국민이 이 정도의 조직과 예산,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헌법상 독립기구’라는 구실로 외부 감시와 통제에서 벗어나 있던 선관위의 민낯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3월 대선 사전투표에서 부실 선거 관리로 ‘소쿠리 투표’라는 여론의 질타를 받은 게 대표적인 예다. 선관위는 당시 자체 감사만 했다. 지난 2년간 북한 정찰총국 소행으로 추정되는 해킹이 이뤄졌는데도 선관위는 국가정보원과 행정안전부의 합동 보안점검을 한동안 거부했다. 이때도 헌법상 독립기구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나 조직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이번엔 채용 비리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산하면서 공정과 신뢰가 생명인 선관위의 존립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지금까지 불거진 전·현직 고위 간부 자녀의 경력직 특혜 채용 의혹만 6건이다. 대부분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으로 일하다 업무 부담이 덜한 선관위에 경력직으로 옮겨온 경우다. 이 중 5명은 임용 후 짧게는 6개월이 지나 승진까지 했다고 하니 채용은 물론 승진에도 ‘아빠 찬스’가 작용한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선관위의 자체 특별감사 11일 만인 그제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을 받는 박찬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이 ‘도의적 책임’을 이유로 사퇴했다. 선관위가 자체 감사 등으로 사태를 마무리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국민의 의혹과 불신이 너무 크다. 스스로 수사를 의뢰해 진실을 밝히고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조직과 인사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개혁도 시급하다. 국가 의전 서열 6위인 노태악 위원장은 조직의 총체적 난맥상에 대한 책임을 지고 거취를 고민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