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3000원 우유값만 걱정할 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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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값 10년來 최대치 인상직후
정부, 유업체 소집해 물가 단속
반시장적 가격결정·쿼터제로는
세계최고 수준 우유값 못 잡아
3년 후 해외 무관세 우유 몰려와
낙농 산업화·생산비 혁신 시급
하수정 유통산업부 차장
정부, 유업체 소집해 물가 단속
반시장적 가격결정·쿼터제로는
세계최고 수준 우유값 못 잡아
3년 후 해외 무관세 우유 몰려와
낙농 산업화·생산비 혁신 시급
하수정 유통산업부 차장
요즘 농림축산식품부의 최대 정책 목표가 물가 관리인 것 같다는 기업의 하소연이 쏟아진다. 농식품부가 지난해부터 수시로 식품·유통업체들을 불러 물가 단속을 벌이고 있어서다.
최근 표적은 우유다. 낙농가와 유가공업체들이 우유의 원료인 원유(原乳) 기본가격을 정하기 위해 한창 줄다리기하며 협상하고 있던 지난 7일, 농식품부는 유가공업체들을 따로 불렀다. 유제품 가격 인상을 최대한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기 위해서다. 27일 원유 기본가격을 10년 만에 최대폭(L당 음용유 88원)으로 인상하는 안이 합의되자마자 오늘(28일)도 유가공업체를 소집했다.
농식품부는 보도자료에서 “원유 가격이 오르더라도 유제품 가격은 과도하게 인상되지 않도록 유업체, 유통업체와 협력할 것”이라며 가격에 개입할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제품 가격에 원가를 반영하는 당연한 경영활동을 하지 말라고 하니,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기업들의 아우성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가공업체들은 이번 원유 가격 인상분을 반영해 1L짜리 흰 우유 가격을 3000원 위로 올려야 하지만 정부 눈치를 보느라 당장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우유 가격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편에 속한다. 국제 물가비교 사이트 넘베오에 따르면 1L짜리 흰 우유 소비자가격은 한국(2747원)이 전 세계 5위다. 일본(1801원), 영국(1732원), 미국(1310원)보다 비싸다.
유독 한국의 우유값이 비싼 이유는 뭘까. 높은 생산비가 가장 큰 이유다. 방목이 어려운 환경에선 사료값이 더 들 수밖에 없다. 젖소의 먹이인 풀 사료와 곡물 사료는 수입에 의존한다. 통계청의 ‘2022년 축산물생산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L당 우유 생산비는 958.71원으로 2021년보다 13.7% 올랐다. 미국, 유럽의 두 배에 달한다.
게다가 2013년부터 시행된 ‘원유 가격 연동제’는 지난 10년간 우유 가격을 더 높이 밀어 올렸다. 생산비에 연동해 원유 가격을 책정하는 이 제도하에선 생산비가 오를수록 원유값을 많이 받을 수 있으니 낙농가들은 굳이 생산비를 절감하고 혁신하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과거 4~5년 주기로 낙농가와 유업체가 원유 가격을 결정할 때 낙농가들이 도로에 원유를 퍼붓고 송아지를 이끌고 시위에 나섰다. 이런 극심한 갈등을 겪자 낙농가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 제도가 도입됐지만 결과적으론 우유의 가격 경쟁력을 없애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대안으로 올해부터 마시는 우유와 가공 우유용 원유 가격을 달리하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했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올해도 결국 협상 시한을 넘기는 갈등이 반복됐고 원유 가격은 최근 10년간 최대 폭으로 올랐다. 생산비와 연계한 반시장적 가격 결정 구조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도 개혁에 총대를 멜 주체가 부재하다는 것도 한국 낙농산업과 유산업의 퇴보를 가속화하는 배경이다. 유업계 점유율 40%로 1위인 서울우유는 낙농 조합으로 이뤄진 단체다. 매일유업, 남양유업, 빙그레 등 다른 유업계와 같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주무 부처인 농식품부와 관련 학계는 역학적으로 낙농업계의 편에 서 있다. 한 교수가 반시장적 가격결정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가 밤길 조심하라는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우유 관련 제도와 관행들을 뜯어보면 농가 보호에만 초점을 맞춰 유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하는 것이 적지 않다. 목장에서 집유장까지 원유를 이동시키는 집유 비용과 낙농가들이 품질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기 위한 검사비까지 유업체가 대신 내준다. 해외에선 이런 비용을 낙농가가 부담한다.
2002년 도입한 쿼터제 역시 손봐야 할 관행이다. 유업체들은 수요·공급에 상관없이 수지가 안 맞아도 쿼터에 따라 농가가 생산한 물량을 떠안아야 한다. 마시는 우유의 소비가 점점 줄어들어 공급 과잉이 되면 그 손실을 정부가 일부 보전해 주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유업체들의 우유 사업은 장기간 역마진이다. 44년 된 푸르밀이 지난해 사업 종료 사태를 겪은 데 이어 중소 유업체가 줄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업체들이 문을 닫으면 농가도 타격을 입는다.
2026년 미국·유럽산 무관세 우유와 유제품이 몰려오기까지 3년도 남지 않았다. 정부는 3000원 우유값을 사수하기 위해 기업 멱살을 잡을 때가 아니다. 낙농가의 대형화와 산업화를 유도하고 국내 사료를 개발해 생산비를 혁신하는 낙농산업의 근본적인 구조 개선 작업에 하루빨리 착수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공멸이다.
최근 표적은 우유다. 낙농가와 유가공업체들이 우유의 원료인 원유(原乳) 기본가격을 정하기 위해 한창 줄다리기하며 협상하고 있던 지난 7일, 농식품부는 유가공업체들을 따로 불렀다. 유제품 가격 인상을 최대한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기 위해서다. 27일 원유 기본가격을 10년 만에 최대폭(L당 음용유 88원)으로 인상하는 안이 합의되자마자 오늘(28일)도 유가공업체를 소집했다.
농식품부는 보도자료에서 “원유 가격이 오르더라도 유제품 가격은 과도하게 인상되지 않도록 유업체, 유통업체와 협력할 것”이라며 가격에 개입할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제품 가격에 원가를 반영하는 당연한 경영활동을 하지 말라고 하니,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기업들의 아우성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가공업체들은 이번 원유 가격 인상분을 반영해 1L짜리 흰 우유 가격을 3000원 위로 올려야 하지만 정부 눈치를 보느라 당장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우유 가격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편에 속한다. 국제 물가비교 사이트 넘베오에 따르면 1L짜리 흰 우유 소비자가격은 한국(2747원)이 전 세계 5위다. 일본(1801원), 영국(1732원), 미국(1310원)보다 비싸다.
유독 한국의 우유값이 비싼 이유는 뭘까. 높은 생산비가 가장 큰 이유다. 방목이 어려운 환경에선 사료값이 더 들 수밖에 없다. 젖소의 먹이인 풀 사료와 곡물 사료는 수입에 의존한다. 통계청의 ‘2022년 축산물생산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L당 우유 생산비는 958.71원으로 2021년보다 13.7% 올랐다. 미국, 유럽의 두 배에 달한다.
게다가 2013년부터 시행된 ‘원유 가격 연동제’는 지난 10년간 우유 가격을 더 높이 밀어 올렸다. 생산비에 연동해 원유 가격을 책정하는 이 제도하에선 생산비가 오를수록 원유값을 많이 받을 수 있으니 낙농가들은 굳이 생산비를 절감하고 혁신하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과거 4~5년 주기로 낙농가와 유업체가 원유 가격을 결정할 때 낙농가들이 도로에 원유를 퍼붓고 송아지를 이끌고 시위에 나섰다. 이런 극심한 갈등을 겪자 낙농가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 제도가 도입됐지만 결과적으론 우유의 가격 경쟁력을 없애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대안으로 올해부터 마시는 우유와 가공 우유용 원유 가격을 달리하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했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올해도 결국 협상 시한을 넘기는 갈등이 반복됐고 원유 가격은 최근 10년간 최대 폭으로 올랐다. 생산비와 연계한 반시장적 가격 결정 구조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도 개혁에 총대를 멜 주체가 부재하다는 것도 한국 낙농산업과 유산업의 퇴보를 가속화하는 배경이다. 유업계 점유율 40%로 1위인 서울우유는 낙농 조합으로 이뤄진 단체다. 매일유업, 남양유업, 빙그레 등 다른 유업계와 같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주무 부처인 농식품부와 관련 학계는 역학적으로 낙농업계의 편에 서 있다. 한 교수가 반시장적 가격결정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가 밤길 조심하라는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우유 관련 제도와 관행들을 뜯어보면 농가 보호에만 초점을 맞춰 유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하는 것이 적지 않다. 목장에서 집유장까지 원유를 이동시키는 집유 비용과 낙농가들이 품질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기 위한 검사비까지 유업체가 대신 내준다. 해외에선 이런 비용을 낙농가가 부담한다.
2002년 도입한 쿼터제 역시 손봐야 할 관행이다. 유업체들은 수요·공급에 상관없이 수지가 안 맞아도 쿼터에 따라 농가가 생산한 물량을 떠안아야 한다. 마시는 우유의 소비가 점점 줄어들어 공급 과잉이 되면 그 손실을 정부가 일부 보전해 주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유업체들의 우유 사업은 장기간 역마진이다. 44년 된 푸르밀이 지난해 사업 종료 사태를 겪은 데 이어 중소 유업체가 줄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업체들이 문을 닫으면 농가도 타격을 입는다.
2026년 미국·유럽산 무관세 우유와 유제품이 몰려오기까지 3년도 남지 않았다. 정부는 3000원 우유값을 사수하기 위해 기업 멱살을 잡을 때가 아니다. 낙농가의 대형화와 산업화를 유도하고 국내 사료를 개발해 생산비를 혁신하는 낙농산업의 근본적인 구조 개선 작업에 하루빨리 착수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공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