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55년 만에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간판을 바꾸고, 류진 풍산그룹 회장을 신임 회장으로 선임했다.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4대 그룹은 일부 계열사의 회원사 합류 방식으로 한경협에 복귀했다. 한경협이 ‘재계의 맏형’이라는 옛 위상을 회복할 기반은 갖춘 셈이다. 한경협의 새 출발에 거는 경제계 기대가 작지 않다. 글로벌 무대에서 경륜이 있는 류 회장이 급변하는 경제안보 시대에 맞는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주요 경제단체의 새 출발은 분명 축하할 일이지만, 박수만 보내기에는 그간 한경협의 풍상과 지금 처한 상황, 나아가 당면 과제가 매우 엄중하다. 무엇보다 정경유착의 이미지를 조기에 청산하는 게 중요하다. 기업을 끌어들인 정치권력의 책임이 크지만, 더 이상 누구 탓만 할 일도 못 된다. 한경협 스스로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혁신에 나서야 한다. 어두운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잘못된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류 회장의 취임 일성에 주목하는 이유다. 외부 인사들로 구성하는 윤리경영위원회를 통해 한경협 집행부와 사무국이 추진하는 사업이 회원사에 유무형의 외압으로 작용할 소지를 살피겠다는 대목도 주목된다. 정치권력의 외풍을 실질적으로 차단하려면 위원회의 독립적인 운영과 구속력 부여가 필수적이라는 외부의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미국 헤리티지재단 같은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변신하겠다는 오랜 다짐 역시 잘 지켜지기 바란다.

새 출발한 한경협의 주된 역할은 무엇보다 ‘자유 시장경제 수호’와 ‘기업가정신 고취’가 돼야 한다. 한국 경제의 토대를 이룬 창업 경제인들이 1961년 ‘시장경제와 자유경쟁이 작동하는 선진자본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내세우며 이 단체를 출범시켰을 당시의 초심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류 회장은 취임사에서 “주요 7개국(G7) 대열에 당당히 올라서는 대한민국을 목표로 삼겠다”며 “글로벌 무대의 퍼스트 무버가 되는 것이 기업보국의 소명을 다하는 길이며, 이 길을 개척하는 데 한경협이 앞장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람직한 비전이다. 기업계 신뢰를 되찾으며 좌고우면 없이 그 비전대로 굳건히 나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