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규제의 나라, 기득권의 나라
세계 최초로 증기자동차를 실용화한 영국은 아이러니하게도 증기차 운행을 규제하는 ‘붉은 깃발법’도 시행했다. 이 법은 증기차 속도를 교외에서 시속 6㎞, 시내에서 시속 3㎞로 제한했고, 증기차 운행 인력 요건도 매우 까다롭게 정했다. 1865년부터 31년이나 지속된 이 법 때문에 영국의 자동차 기술은 오히려 후발주자인 독일, 프랑스에 뒤처지고 말았다. 붉은 깃발법은 겉으로는 ‘말이 증기차 소리에 놀라 폭주하는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나, 실상은 증기차 등장에 위기의식을 느낀 마차 업주와 마부조합이 의회에 로비해서 시행된 것이었다.

이런 사례는 국내에서도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것이 ‘타다 금지법’이다. 2018년 출시한 ‘타다’는 택시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웠던 서비스를 제공하며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택시업계가 ‘타다’를 검찰에 고발하고 택시기사 분신 사건까지 일어나며 사회적 갈등이 고조됐다. 21대 총선을 1개월 앞둔 2020년 3월 여야 정치권은 택시업계의 의견을 대폭 반영한 ‘타다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약 20만 택시기사의 표를 의식했을까, 여야 모두 당론으로 법안에 찬성했다. 타다 금지법 이후 심야택시 대란, 요금 인상 등으로 소비자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편의점에서 파는 일반의약품에 서민들이 애용하는 겔포스 등을 추가하려는 움직임은 약사회의 반대로 10년째 제자리걸음이고, 법률서비스 플랫폼 ‘로톡’은 변호사협회의 반발로 고사 위기에 처했다. 부동산거래 플랫폼 ‘직방’도 공인중개사협회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기득권의 저항으로 국민의 편익이 침해당하고, 새로운 산업의 성장이 가로막힌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경제활동 관련 규제는 기득권과 연결돼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은 이를 ‘철의 삼각형(iron triangle)’으로 설명했다. 이익 집단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관료, 정치권에 이런저런 규제를 만들어달라고 청탁한다. 관료는 퇴직 후 자리를 보장받으며 규제를 설계하고, 정치권은 표와 예산을 챙기며 입법화에 나선다. 이들은 규제를 더 강화하려고 한다. 정권마다 기득권을 둘러싼 카르텔로 인해 규제 개혁 실패가 반복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경제가 1%대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하기 위한 현실적 해법은 과감한 규제 개혁으로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우선 글로벌 경쟁에서 우리 기업이 불리하지 않도록 각종 규제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 특히 경쟁국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는 과감하게 없애야 한다. 규제 방식도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할 수 있는 것을 나열하는 포지티브 규제에서 할 수 없는 것만 최소한으로 지정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바꿔야 한다.

‘그림자 규제’도 걷어내야 한다. 기업 현장에서 겪는 대부분 고충은 명문화되지 않은 채 법령의 해석과 집행 과정에 숨어 있는 그림자 규제 때문이다. 이런 규제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의 지지가 필요하다. 그래야 정치권과 관료의 저항을 이겨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 개혁이 국민 전체의 삶과 밀접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세상은 변했고 정부가 모든 문제를 다루던 시대는 지나갔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성장동력을 재점화하는 일은 민간이 활력을 되찾고 창의적 도전에 나서야 가능하다. 기득권을 깨부수는 규제 개혁이야말로 경제 살리기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