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삐 삐 삐….’ 지난 25일 세종특별자치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앞. 용산개발을 촉구하는 시위대가 몰려와 청사관리사무소 측이 일부 쪽문을 폐쇄하는 등 경비가 삼엄했지만 청사 정문 쪽은 분위기가 달랐다. 국토교통부로 들어가는 6번 문을 통과할 때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로비에서 잠깐 서성이다 한 직원이 스피드게이트(자동개폐식 출입통제 개찰구)를 통과할 때 따라붙었다. 특수경비원은 신분을 확인하지 않았다. 스피드게이트는 2명 동시 출입을 감지한 듯 경보음을 울렸지만 그뿐이었다.

#2. 지난 4월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3층. 한 중년 남성이 헌재 소장실에 들어와 한참을 어슬렁거렸다. 낯선 남성이 침입했지만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았다. 뒤늦게 방호원이 달려와 붙잡았지만 난동을 부리지 않았고 흉기도 없어 바로 되돌려 보냈다.

지난해 10월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 무단 침입한 60대 남성의 투신자살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올 4월 경비를 대폭 강화했지만 일부 국가중요시설(가~다급)의 출입통제시스템은 여전히 ‘무장해제’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각 시설 단위로 관리하는 출입통제시스템을 정부 차원에서 통일하고 방호원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뻥 뚫린 국가기관 출입시스템] 방문증 없이 슬쩍 들어가니…세종청사·경찰청 '무사 통과'

○“신분증 두고 나왔다”는 말에 무사 통과

국회 본관 정·후문 출입구는 경비가 철저한 편이었지만 왼쪽 출입구는 사실상 뚫려 있었다. 왼쪽 출입구는 보안검색대 앞에 방호원 1명이 상주하지만 취재팀이 2회에 걸쳐 출입·방문증 없이 직원 뒤를 따라 들어가는데 막지 않았다. 국회의장실, 국회부의장실이 있는 3층은 물론 본회의장, 로텐더홀 앞을 활보했지만 누구도 출입증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검찰청도 본관 건물 현관 유리문에 출입증을 대야 들어갈 수 있지만 직원 뒤를 따라 쉽게 들어갔다. 서울중앙지법, 경찰청, 서울지방경찰청, 헌법재판소도 출입·방문증 없이 들어갈 수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금융기관은 ‘철통보안’

한국은행, 예금보험공사 등 금융기관은 출입통제가 철저했다. 한은 본점은 차량 진입을 시도하자 폭발물탐지기로 차량 곳곳을 훑었다. 도보로 2차 진입을 시도하자 정문 앞 방호원이 막아섰다. 신분증을 맡기더라도 방문 목적과 담당자 이름을 밝혀야 했고 담당자 확인이 안 되면 못 들어갔다. 예보도 깐깐하긴 마찬가지였다. 절차는 한은과 비슷했지만 방문자 직책까지 적어야 한다며 명함을 요구했다.

국세청과 금융감독원도 비교적 출입이 빡빡했지만 한은과 예보보다는 경비 수위가 한 단계 낮았다. 1층 안내데스크에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방문 목적을 설명한 뒤 방문증을 받아 출입하는 방식이었는데 위조 주민등록증을 가려내기 어렵다는 게 문제였다. 서울의 한 경찰서 경비과장은 “최근 3D프린터 등 첨단기기를 이용한 주민등록증 위조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정부청사 등 공공기관에 출입하려면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 진위 여부까지 확인하기 힘들어 마음만 먹으면 출입이 가능하다”고 우려했다.

○출입통제 강화해도 문제는 사람

전문가들은 보안에 대한 인식 부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출입통제시스템을 강화해도 담당자의 인식이 부족하면 무단침입을 막기 힘들다는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방호원이 누구냐에 따라 출입 여부는 복불복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출퇴근 및 점심시간에 직원·민원인이 뒤엉키는 것을 방지하려고 스피드게이트를 활짝 열어두는 행태도 무단침입을 방조하는 요소로 지적됐다.

정부세종청사 방호·보안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최진혁 한국기업보안협의회장은 “대기업 보안담당자가 이사급임을 감안해 공공기관 보안책임자도 일정 직급 이상 정규직 공무원에게 맡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두현 한국체대 안전관리학과 교수도 “장비가 아무리 좋아도 결국 사람이 통제하는 것이라 근무자 교육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김선주/박상익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