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북한 개별관광’ 등 남북한 협력사업 추진을 놓고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지난 17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과 만난 뒤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지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미국이 한국 정부의 북한 개별관광 허용 방침에 동의했다는 뉘앙스다.
이도훈 "남북관계 개선, 美 지지 재확인"…美 "비핵화 진전과 보조 맞춰야"
미 국무부는 그러나 같은 날 “남북 협력을 지지한다”면서도 “비핵화 진전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 비핵화에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독자적인 움직임에 불편한 시각을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 본부장은 이날 워싱턴DC에서 특파원들에게 “비건 부장관과 만나 두 가지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지를 재확인했고 한·미가 남북관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항구적 평화정착에 관해 긴밀히 공조하는 데도 합의했다는 설명이다. 이 본부장은 “남북 협력 문제는 한·미 간 협의가 이제 시작됐고 시간을 끌 수 있는 것도 아니다”며 “속도감 있게 협의를 진행해 나갈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미·북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금강산 관광을 매개로 남북 협력에 속도를 내려는 한국 정부의 구상을 미국이 지지한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 협력 의지를 밝힌 만큼 외교당국은 통일부가 개별관광과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는 즉시 미국과 협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미국도 주권 국가로서 한국의 결정을 존중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미 간 협의엔 북한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컴퓨터나 휴대폰 등 전자제품을 들고 갔다가 유엔 대북제재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포함될 전망이다.

미 국무부는 그러나 이 본부장이 간담회를 하기 불과 몇 시간 전 남북 협력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묻는 언론의 질문에 “미국은 남북 협력이 반드시 비핵화 진전에 보조를 맞춰 진행되도록 한국과 조율하고 있다”며 “한국이 최고의 결정을 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원칙적 지지를 확인하면서도 남북 협력이 북한 비핵화보다 너무 앞서가서는 안 된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이다.

미 국무부는 청와대와 여권이 비판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옹호했다. 18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모건 오테이거스 국무부 대변인은 “해리스 대사는 국무장관과 대통령의 뜻에 따라 일한다”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대사를 크게 신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리스 대사는 지난 16일 외신간담회에서 남북 협력에 대해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다뤄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단히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대북정책은 대한민국의 주권에 해당한다”고 공개적인 경고 메시지를 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