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의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권에서 공식 제기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4일 “사태가 장기화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며 신속한 재정 투입을 강조했다. 자유한국당 역시 추경 편성에 전향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 및 광역자치단체장들과 얘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정세균 국무총리, 이시종 충북지사, 문 대통령.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 및 광역자치단체장들과 얘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정세균 국무총리, 이시종 충북지사, 문 대통령.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최운열 “선제적 재정 대책 마련해야”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비상 대처를 주문했다. 특히 “우리 경제가 받을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대응책 마련에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각에는 “신속한 재정 투자로 경제에 힘을 불어넣어 달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경제’라는 단어를 15번이나 언급했다. 특히 “중국에서 공장들이 가동을 멈추고 있고, 해외여행의 발길을 끊고 있으며, 부품 공급망에도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며 “기업들 애로에 책임 있게 응답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한발 더 나아가 경기 하방 압력을 막기 위해 추경 편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민주당 제3정책조정위원장인 최운열 의원은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정부와 국회가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추경 등 모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의원은 “올 들어 반도체 업황 회복 등 경기 회복 요소들이 충분히 있었는데 우한 폐렴으로 다시 불투명해졌다”며 “경기 회복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강력하고 선제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추경 재정 활용 방안에 대해선 “우한 폐렴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소상공인과 관광업계, 부품 조달을 하지 못해 휴업을 할 수밖에 없는 제조업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민주당의 한 핵심 의원도 “청와대, 정부와 추경 편성 등을 폭넓게 논의하고 있다”며 “여론을 떠보기보다는 정부·여당이 최종 결정한 뒤 전격적으로 발표하는 형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예비비 지출을 통해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경제심리를 호전시킬 특단의 카드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청와대는 아직 추경에 신중한 입장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5일 당·정·청 모임이 예정돼 있는 만큼 상황을 보고 필요하다면 논의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 "경제충격 최소화 대책 마련"…여권 "추경 검토해야"
한국당도 “추경 필요하다”

한국당도 신속한 재정 투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황교안 대표는 지난 3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일시적 규제 완화와 재정 투입 등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대표실 관계자는 “정부와 정치권이 우한 폐렴 추경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선제적인 재정 투입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일시적 규제 완화와 관련해선 “마스크 제조업체와 중국산 원·부자재를 이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 등에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을 일시적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번 우한 폐렴 사태가 추경 편성 요건을 충족하는 데엔 법적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국가재정법은 자연·사회재난이 발생하거나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있을 때 추경을 편성할 수 있도록 한다. 과거에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사스(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가 퍼졌을 때 전염병 발생으로 인한 추경을 편성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메르스 극복을 위해 11조6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한 게 대표적이다. 한국은행 등은 사스와 메르스가 경제 성장률을 각각 0.1%포인트, 0.3%포인트 끌어내렸다고 분석하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사스는 중국의 소매 판매와 산업 생산을 위축시켜 한국의 대중국 수출에 영향을 줬고, 메르스는 관광·음식·숙박업 등 내수산업에 타격을 줬다”며 “하지만 우한 폐렴은 수출과 내수에 모두 타격을 주고 있어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여당이 정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기 부양을 위한 추경을 밀어붙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한국당이 추경에 긍정적일 경우 논의가 수월해질 수 있다”며 “향후 정책 방향 수립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섭/박재원/고은이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