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실업급여 급증에…고용보험기금, 연말 바닥난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적립금 1년 새 97% 급감
1995년 제도 도입 후 첫 '고갈'
1995년 제도 도입 후 첫 '고갈'
실직자에게 지급하는 실업급여(구직급여) 재원인 고용보험기금이 올해 말 고갈될 것이란 정부의 자체 추산이 나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실직자가 급증한 데다 정부가 실업급여 지원을 대폭 강화한 여파다. 1995년 고용보험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고용보험기금이 바닥날 위기에 놓였다.
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23일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고용부는 올해 말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이 1952억원밖에 남지 않을 것으로 추산했다. 작년 말 7조3532억원에서 97% 급감한 수치다. 정부가 이 같은 자체 전망치를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말 10조2544억원에 달했던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이 사실상 고갈될 위기에 처한 것은 고용보험기금 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안전망 강화를 이유로 정부가 고용보험 가입자를 대폭 늘린 데다 코로나19발(發) 실업대란까지 겹친 결과다. 2017년 9조4607억원이던 고용보험기금 지출은 2018년 11조5778억원, 작년 13조9515억원으로 급증한 데 이어 올해는 사상 최대인 21조4628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실업급여 지출이 늘자 고용부는 지난 3월 1차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2000억원을 고용보험기금에 긴급 투입했다. 그런데도 모자랄 것 같자 이달 4일 국회에 제출한 3차 추경 편성안에서 3조4700억원을 추가로 보전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같은 추세라면 1380만 명의 근로자와 소속 회사가 절반씩 내는 고용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올 고용기금 지출 21兆…3년 만에 2배 늘어난다
국책 연구소인 한국노동연구원은 작년 12월 낸 ‘2020~2024년 고용보험 중기 재정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말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이 3조4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고용노동부가 불과 반년 만에 올해 말 고용기금 적립금이 2000억원도 채 남지 않을 것으로 추산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고용 대란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의미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지난달 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 의뢰로 추계한 ‘실업급여 재정 소요 전망’ 자료에서 지난 4월 고용 상태(전년 동기 대비 취업자 수 47만6000명 감소)가 연말까지 지속될 경우 고용기금 적립금이 모두 소진될 것으로 예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들어 5월까지 실업급여(구직급여) 지급액은 총 4조4232억원이었다.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8조870억원의 절반을 이미 넘어섰다. 2016년 한 해 동안 지급된 구직급여 규모(4조6840억원)와 맞먹는다. 월별 실업급여 지급액은 올 2월부터 매달 사상 최대치(5월 1조162억원)를 경신하고 있다.
실업급여 지급액이 급증한 것은 정부가 지원 수준을 높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작년 10월 실업급여 지급액을 퇴직 전 3개월 평균 임금의 50%에서 60%로 높이고, 지급 기간도 240일에서 270일로 늘렸다.
2012년 이후 6년간 흑자였던 고용기금 재정수지는 2018년 8082억원 적자로 돌아선 뒤 작년엔 2조877억원으로 적자 폭이 커졌다. 올해는 적자 규모가 7조5180억원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수입보다 지출이 빠른 속도로 늘어난 결과다. 정부의 올해 고용기금 예상 지출액은 지난해 13조9515억원보다 54% 많은 21조4628억원이다.
고용기금 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고용기금에 들어가는 국고지원금도 큰 폭으로 늘었다. 고용보험에 대한 국고지원금은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907억원에서 올해 4조2502억원으로 무려 47배 급증할 전망이다. 올해 지원금에는 정부가 공공사업에 활용하기 위해 쌓아 놓은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에서 빌리는 3조1000억원도 포함돼 있다. 공자기금 차입금으로 고용기금을 보전해 주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고용기금 고갈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지 않고 기부하는 경우 모두 고용기금에 보태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4조3000억원의 재난지원금 중 최소 2조1000억원 이상 기부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 기부액은 282억원에 그쳤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여당은 재원 마련 방안은 고민하지 않고 고용보험 지원 범위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고용보험 가입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아 달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5만 명가량의 예술인을 고용보험 가입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의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여당은 택배기사 등 220만 명에 달하는 특수고용 근로자도 고용보험에 추가로 가입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추 의원은 “전 국민 고용보험 같은 생색내기용 정책만 내세우지 말고 재원을 고려해 고용보험 제도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
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23일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고용부는 올해 말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이 1952억원밖에 남지 않을 것으로 추산했다. 작년 말 7조3532억원에서 97% 급감한 수치다. 정부가 이 같은 자체 전망치를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말 10조2544억원에 달했던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이 사실상 고갈될 위기에 처한 것은 고용보험기금 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안전망 강화를 이유로 정부가 고용보험 가입자를 대폭 늘린 데다 코로나19발(發) 실업대란까지 겹친 결과다. 2017년 9조4607억원이던 고용보험기금 지출은 2018년 11조5778억원, 작년 13조9515억원으로 급증한 데 이어 올해는 사상 최대인 21조4628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실업급여 지출이 늘자 고용부는 지난 3월 1차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2000억원을 고용보험기금에 긴급 투입했다. 그런데도 모자랄 것 같자 이달 4일 국회에 제출한 3차 추경 편성안에서 3조4700억원을 추가로 보전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같은 추세라면 1380만 명의 근로자와 소속 회사가 절반씩 내는 고용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올 고용기금 지출 21兆…3년 만에 2배 늘어난다
국책 연구소인 한국노동연구원은 작년 12월 낸 ‘2020~2024년 고용보험 중기 재정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말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이 3조4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고용노동부가 불과 반년 만에 올해 말 고용기금 적립금이 2000억원도 채 남지 않을 것으로 추산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고용 대란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의미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지난달 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 의뢰로 추계한 ‘실업급여 재정 소요 전망’ 자료에서 지난 4월 고용 상태(전년 동기 대비 취업자 수 47만6000명 감소)가 연말까지 지속될 경우 고용기금 적립금이 모두 소진될 것으로 예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들어 5월까지 실업급여(구직급여) 지급액은 총 4조4232억원이었다.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8조870억원의 절반을 이미 넘어섰다. 2016년 한 해 동안 지급된 구직급여 규모(4조6840억원)와 맞먹는다. 월별 실업급여 지급액은 올 2월부터 매달 사상 최대치(5월 1조162억원)를 경신하고 있다.
실업급여 지급액이 급증한 것은 정부가 지원 수준을 높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작년 10월 실업급여 지급액을 퇴직 전 3개월 평균 임금의 50%에서 60%로 높이고, 지급 기간도 240일에서 270일로 늘렸다.
2012년 이후 6년간 흑자였던 고용기금 재정수지는 2018년 8082억원 적자로 돌아선 뒤 작년엔 2조877억원으로 적자 폭이 커졌다. 올해는 적자 규모가 7조5180억원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수입보다 지출이 빠른 속도로 늘어난 결과다. 정부의 올해 고용기금 예상 지출액은 지난해 13조9515억원보다 54% 많은 21조4628억원이다.
고용기금 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고용기금에 들어가는 국고지원금도 큰 폭으로 늘었다. 고용보험에 대한 국고지원금은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907억원에서 올해 4조2502억원으로 무려 47배 급증할 전망이다. 올해 지원금에는 정부가 공공사업에 활용하기 위해 쌓아 놓은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에서 빌리는 3조1000억원도 포함돼 있다. 공자기금 차입금으로 고용기금을 보전해 주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고용기금 고갈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지 않고 기부하는 경우 모두 고용기금에 보태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4조3000억원의 재난지원금 중 최소 2조1000억원 이상 기부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 기부액은 282억원에 그쳤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여당은 재원 마련 방안은 고민하지 않고 고용보험 지원 범위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고용보험 가입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아 달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5만 명가량의 예술인을 고용보험 가입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의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여당은 택배기사 등 220만 명에 달하는 특수고용 근로자도 고용보험에 추가로 가입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추 의원은 “전 국민 고용보험 같은 생색내기용 정책만 내세우지 말고 재원을 고려해 고용보험 제도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