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경제학자가 분석한 지도층 자제 해외 유학[노경목의 미래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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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김두관 윤미향…
지도층 자녀는 떠나고 나머지는 남고
英 경제학자의 '근로자 국가'로 설명
지도층 자녀는 떠나고 나머지는 남고
英 경제학자의 '근로자 국가'로 설명
이인영 김두관 윤미향…
최근 한두달 사이 자녀 해외 유학으로 세간에 이름이 오르내린 국회의원들이다. 사실 정치인을 비롯한 소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자녀들을 해외에 유학시키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서울 강남지역 부유층들 사이에서는 SKY로 불리는 국내 명문대 대신 해외 유학을 선택하는 것이 대세로 굳어진지 오래다.
다만 이들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 재야 활동과 시민운동 과정에서 약자들을 대변한다고 주장해 왔기에 상대적으로 더 큰 비판에 노출됐다. 주변에 알려온 스스로의 생활수준과 비교해 과도한 유학 경비를 어떻게 부담했는지도 논란이다.
스스로도 살아온 궤적과 자식의 해외 유학 사이에서 모순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이들은 자녀의 해외 유학을 선택했을까. 영국의 여성 좌파 경제학자로 유명한 조앤 로빈슨이 일찌기 사회 지도층의 해외 유학 원인을 분석한 바 있다.
그는 '수요독점'이라는 개념을 창안해 조직되지 않은 근로자들의 노동력을 기업 하나가 독점적으로 구매할 경우 시장 왜곡이 발생해 완전 경쟁시장 대비 낮은 급여를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경제학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로빈슨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산계층을 중심으로 한 사회 지도층이 국민국가를 벗어나 세계 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예언했다. 자신의 부를 창출할 기반은 태어난 국가에 둔 채 자녀 양육 등 일상 생활은 여건이 좋은 다른 나라를 선택해 보낼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렇게 자산계층이 떠난 모국은 점점 떠나지 못한 이들만 남게 된다. 자본가가 해외로 이주하고 근로자는 남는 '근로자 국가(worker's nation)'이다. 이렇게 되면 국부 유출로 생활 인프라 등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어 남아 있는 이들의 삶은 악화된다.
근로자 계급을 중심으로 이뤄진 근로자 국가는, 이름만 놓고 보면 좌파들의 천국처럼 들리지만 기실 떠날 사람은 모두 떠난 디스토피아인 것이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대표적이다.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유학에 든 비용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인들이 이 후보자처럼 자녀를 해외에 유학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후보자의 아들은 3년 6개월간 공부하고 해외에서 1년만 유학하면 스위스 대학 학위를 받을 수 있는 디자인 대안학교에 첫번째 입학생으로 들어갔다. 재벌 회장 부인, 언론사 오너 부인,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이사진으로 있는 학교다. 여기에 자녀를 입학시키는 것은 왠만한 인맥과 사회적 영향력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미향 의원 딸의 미국 음대 유학 역시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쉽게 실행하기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자녀도 해외 유학을 가 있거나 유학 경험이 있지만, 박 전 시장처럼 빚만 7억원 있는 보통의 아버지가 그같은 기회를 아들 딸에게 제공하기는 어렵다.
결국 자녀를 해외에 보낼 수 있는지 없는지는 단순히 부모의 경제력 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영향력도 중요한 변수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실 이는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한 중국 전문가의 말이다.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중국에서 계층을 나누는 가장 쉬운 기준은 집이 있느냐 없느냐 였다. 하지만 2010년을 전후해 자식을 해외에 보냈는지가 부모의 능력을 가르는 기준이 됐다. 물론 여기서도 미국과 유럽, 일본, 한국 등 여러 선택지 중에 어느 곳에 유학을 시키는지가 중요하다."
이같은 순위만 놓고 보면 한국은 인재에 어느 선진국 못지 않은 투자를 하고도 인재가 해외로 빠져 나가고 있는 국가다. 지도층 자녀들의 해외 유학 트렌드만 놓고 보더라도 이같은 분석이 틀렸다고 보기 힘들다.
문제는 이들이 현지에서 자녀를 낳고 교육시키는 시점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가업을 승계하거나 다른 활동을 하기보다는 익숙해진 해외에 머무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IMD 조사에서 인재 해외 유입 분야 순위는 스위스가 1위로 미국, 스웨덴, 룩셈부르크, 캐나다 등이 뒤를 이었다. 살기 좋은 나라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위 능력 있는 사람도, '부모 백' 있는 사람도 떠나고 한국에 남은 사람들은 저출산·고령화의 무거운 짐만 져야 할 수도 있다. 인재가 수도권으로 몰리며 쇠락한 지방 중소도시들의 모습이 한국의 미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좌파의 해법은 부와 소득의 해외 유출이 일어나지 않도록 금융 규제를 하는 것이다. 국내의 부동산이나 생산기반을 통해 얻은 이익으로 지도층이나 자산계층이 해외에서 생활을 즐기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지원 사회진보연대 연구실장의 말이다.
"저성장과 저출산·고령화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인 가운데 한국이 주거 매력이 떨어지는 것 역시 돌이키기 힘들 것이다. 국가 자산의 해외 유출을 막는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우파의 해법은 자산계층과 외국인 등에 보다 매력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자산의 해외 이전을 차단하더라도 각종 전문인력의 해외 취업까지 원천 차단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드라마나 케이팝을 통해 한국에 대한 매력을 높이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해법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이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기득권이나 거대권력에 맞서 싸워왔기 때문인지 여당, 특히 시민단체 출신 정치인들은 자신을 지금도 약자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행정부는 물론 입법, 지방자치단체까지 장악하고도 검찰이나 언론 같은 기득권들이 자신들을 공격한다고 주장한다.
정파를 뛰어넘어 존경할만한 학문적 성취를 이룩한 조앤 로빈슨의 논의에서 보듯 자녀를 유학 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사회에서 기득권에 편입됐음을 의미한다. 기득권, 사회 지도층 같은 말을 터부시 여길 필요는 없다. 다만 스스로 그같은 지위에 올랐음을 인정하고 책임감 있는 행동을 보여주길 바란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최근 한두달 사이 자녀 해외 유학으로 세간에 이름이 오르내린 국회의원들이다. 사실 정치인을 비롯한 소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자녀들을 해외에 유학시키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서울 강남지역 부유층들 사이에서는 SKY로 불리는 국내 명문대 대신 해외 유학을 선택하는 것이 대세로 굳어진지 오래다.
다만 이들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 재야 활동과 시민운동 과정에서 약자들을 대변한다고 주장해 왔기에 상대적으로 더 큰 비판에 노출됐다. 주변에 알려온 스스로의 생활수준과 비교해 과도한 유학 경비를 어떻게 부담했는지도 논란이다.
스스로도 살아온 궤적과 자식의 해외 유학 사이에서 모순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이들은 자녀의 해외 유학을 선택했을까. 영국의 여성 좌파 경제학자로 유명한 조앤 로빈슨이 일찌기 사회 지도층의 해외 유학 원인을 분석한 바 있다.
"떠날 수 있느냐"가 계층 결정 짓는다
영국 케임브리지를 졸업한 조앤 로빈슨은 최초의 여성 경제학자로 불린다. 그만큼 남성 중심의 경제학계에서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1903년 태어나 20대 초반부터 모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쳤지만 교수직에 오르기까지는 30년이 걸렸다.그는 '수요독점'이라는 개념을 창안해 조직되지 않은 근로자들의 노동력을 기업 하나가 독점적으로 구매할 경우 시장 왜곡이 발생해 완전 경쟁시장 대비 낮은 급여를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경제학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로빈슨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산계층을 중심으로 한 사회 지도층이 국민국가를 벗어나 세계 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예언했다. 자신의 부를 창출할 기반은 태어난 국가에 둔 채 자녀 양육 등 일상 생활은 여건이 좋은 다른 나라를 선택해 보낼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렇게 자산계층이 떠난 모국은 점점 떠나지 못한 이들만 남게 된다. 자본가가 해외로 이주하고 근로자는 남는 '근로자 국가(worker's nation)'이다. 이렇게 되면 국부 유출로 생활 인프라 등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어 남아 있는 이들의 삶은 악화된다.
근로자 계급을 중심으로 이뤄진 근로자 국가는, 이름만 놓고 보면 좌파들의 천국처럼 들리지만 기실 떠날 사람은 모두 떠난 디스토피아인 것이다.
떠날 수 있는 조건은 어떻게 정해지나
로빈슨은 자본가와 근로자로 나눠 해외로 떠나는 이와 남는 이를 구분했지만 현실에서 이는 한층 복잡하다.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대표적이다.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유학에 든 비용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인들이 이 후보자처럼 자녀를 해외에 유학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후보자의 아들은 3년 6개월간 공부하고 해외에서 1년만 유학하면 스위스 대학 학위를 받을 수 있는 디자인 대안학교에 첫번째 입학생으로 들어갔다. 재벌 회장 부인, 언론사 오너 부인,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이사진으로 있는 학교다. 여기에 자녀를 입학시키는 것은 왠만한 인맥과 사회적 영향력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미향 의원 딸의 미국 음대 유학 역시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쉽게 실행하기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자녀도 해외 유학을 가 있거나 유학 경험이 있지만, 박 전 시장처럼 빚만 7억원 있는 보통의 아버지가 그같은 기회를 아들 딸에게 제공하기는 어렵다.
결국 자녀를 해외에 보낼 수 있는지 없는지는 단순히 부모의 경제력 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영향력도 중요한 변수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실 이는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한 중국 전문가의 말이다.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중국에서 계층을 나누는 가장 쉬운 기준은 집이 있느냐 없느냐 였다. 하지만 2010년을 전후해 자식을 해외에 보냈는지가 부모의 능력을 가르는 기준이 됐다. 물론 여기서도 미국과 유럽, 일본, 한국 등 여러 선택지 중에 어느 곳에 유학을 시키는지가 중요하다."
두뇌 해외 유출과 한국의 미래
로빈슨의 논의로 돌아와서. 지도층과 자산계층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자녀 해외 유학이 로빈슨이 말한 '근로자 국가'와 비슷한 상황을 한국에 만들까.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자료가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인재 순위(world talent ranking)'다. 여기서는 세계 63개 국가를 대상으로 △인재 투자(investment & development) △인재의 질(readiness) △인재 해외 유입(appeal) 등으로 나눠 순위를 메긴다. 여기서 한국은 인재 투자에서 지난해 19위까지 올랐다. 인재의 질은 34위로 중간 정도다. 하지만 인재 해외 유입은 41위로 사실상 들어오는 인재보다 유출되는 인재가 더 많다. 2016년부터 42위와 41위를 오가고 있다.이같은 순위만 놓고 보면 한국은 인재에 어느 선진국 못지 않은 투자를 하고도 인재가 해외로 빠져 나가고 있는 국가다. 지도층 자녀들의 해외 유학 트렌드만 놓고 보더라도 이같은 분석이 틀렸다고 보기 힘들다.
문제는 이들이 현지에서 자녀를 낳고 교육시키는 시점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가업을 승계하거나 다른 활동을 하기보다는 익숙해진 해외에 머무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IMD 조사에서 인재 해외 유입 분야 순위는 스위스가 1위로 미국, 스웨덴, 룩셈부르크, 캐나다 등이 뒤를 이었다. 살기 좋은 나라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위 능력 있는 사람도, '부모 백' 있는 사람도 떠나고 한국에 남은 사람들은 저출산·고령화의 무거운 짐만 져야 할 수도 있다. 인재가 수도권으로 몰리며 쇠락한 지방 중소도시들의 모습이 한국의 미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해결책이 있을까
이같은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일단 좌파의 해법과 우파의 해법이 있다.좌파의 해법은 부와 소득의 해외 유출이 일어나지 않도록 금융 규제를 하는 것이다. 국내의 부동산이나 생산기반을 통해 얻은 이익으로 지도층이나 자산계층이 해외에서 생활을 즐기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지원 사회진보연대 연구실장의 말이다.
"저성장과 저출산·고령화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인 가운데 한국이 주거 매력이 떨어지는 것 역시 돌이키기 힘들 것이다. 국가 자산의 해외 유출을 막는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우파의 해법은 자산계층과 외국인 등에 보다 매력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자산의 해외 이전을 차단하더라도 각종 전문인력의 해외 취업까지 원천 차단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드라마나 케이팝을 통해 한국에 대한 매력을 높이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해법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이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기득권이나 거대권력에 맞서 싸워왔기 때문인지 여당, 특히 시민단체 출신 정치인들은 자신을 지금도 약자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행정부는 물론 입법, 지방자치단체까지 장악하고도 검찰이나 언론 같은 기득권들이 자신들을 공격한다고 주장한다.
정파를 뛰어넘어 존경할만한 학문적 성취를 이룩한 조앤 로빈슨의 논의에서 보듯 자녀를 유학 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사회에서 기득권에 편입됐음을 의미한다. 기득권, 사회 지도층 같은 말을 터부시 여길 필요는 없다. 다만 스스로 그같은 지위에 올랐음을 인정하고 책임감 있는 행동을 보여주길 바란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