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원의장 사무실도 ‘점령’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6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의회의사당에 난입해 폭력 시위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 시위자가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사무실을 점거한 채 의자에 앉아 있다.   /AFP연합뉴스
< 하원의장 사무실도 ‘점령’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6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의회의사당에 난입해 폭력 시위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 시위자가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사무실을 점거한 채 의자에 앉아 있다. /AFP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번 미국 의사당 난입 사건에 대해 “충격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미국 정치 역사상 최악의 사태” “민주주의 시스템이 무너진 것”이라는 등의 반응까지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전부터 진행된 미국 사회의 양극화가 트럼프식 ‘갈라치기 정치’와 코로나19 사태 등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곪아터진 결과로 보고 있다. ‘갈등의 구조화’가 공고해진 만큼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통합의 정치가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한국도 지금과 같이 진영 논리에 갇힌 정치가 이어지면 더 큰 파국과 맞닥뜨릴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

"美 민주주의 치욕의 날…바이든, 취임 후에도 갈등 봉합 쉽지 않아"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로 규정했다. 임성학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교과서처럼 여겨졌던 미국의 민주주의가 세계적으로 치욕당한 날”이라며 “제도적으로 왜 이렇게 허술하게 방치해놨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모든 시스템이 다 무너진 게 아니냐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이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게 됐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6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의회에서 공화당 의원 당선자들이 민주당 의원들의 회의 진행을 막아섰다”며 “워싱턴뿐 아니라 다른 주의회에서도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모습을 보니 미국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1차적으로 이번 사태의 책임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결과 불복에 돌리고 있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직접적인 배경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승복하지 않겠다는 연설을 하자 일부 열성 지지자들이 자극받아 의회로 몰려간 것”이라며 “트럼프가 대선 내내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하며 민심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게 결국 이런 사태까지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준한 교수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정치·경제·사회 양극화가 확대되던 차에 트럼프로 인해 더욱 갈등이 재생산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성학 교수는 “가뜩이나 양극화되던 미국에 코로나19까지 확산되면서 반목과 갈등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전반적인 민주주의의 위기”라며 “진영논리가 확산되면서 각자의 정체성에 따라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탈진실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합의 정치 절실”

전문가들은 이번 의사당 난입사건과 같은 극단적인 사태는 잦아들 것으로 내다봤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인성교양학부 교수는 “미국 여야 정치인들이 앞다퉈 나서서 이번 사태를 일부 극단주의자의 돌발행동으로 규정짓고 진화하고 있다”며 “미국 정치에 아직은 건강함이 남아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선거를 책임졌던 지방 정부의 공무원들이 소속 정당과 무관하게 선거 결과에 승복하고 있고, 80건도 넘는 (선거무효) 소송에서 사법부가 증거 없는 소송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며 “제도와 양심을 믿는 사람들이 진짜 미국의 저력”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여진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에도 갈등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 교수는 “이번 사태는 이념갈등이 아니라 진영갈등의 결과”라며 “이념갈등은 이성적 영역에 속해 있기 때문에 봉합이 가능하지만 진영갈등은 감성적 영역이라 봉합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들다”고 지적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바이든 당선인은 정치적 광기에 휩싸인 국민들을 체제 내로 견인할 통합의 정치가 다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국도 미국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율 교수는 “문재인 정부도 지지층만 바라보며 ‘갈라치기 정치’를 했다”며 “이런 식으로 가다간 한국 역시 미국과 같은 극단의 사태가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성학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제 적폐청산은 마무리하고 통합을 위한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임도원/성상훈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