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가 내전?…美의 '7가지 죄' 꼽으며 참전 정당화한 중국 [송영찬의 디플로마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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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1950년 6월부터 10여개국을 규합해 이른바 ‘유엔군’을 만들어 조선반도(한반도)에서 남북 쌍방 간에 벌어진 내전에 개입했다”
신화통신과 인민일보 등 중국 관영 매체들이 지난 4일 일제히 보도한 ‘7가지 대죄’라는 제목의 글의 일부분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글은 미국이 자국의 동맹체계를 이용해 7개의 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의 죄’ 7가지는 △폭력 △약탈 △권리침해 △파괴 △거짓말 △비호 △내분 등입니다.
북한은 6·25전쟁을 국제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우리 민족 내부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규정합니다. 이른바 ‘이승만 괴뢰 정권’ 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남조선 인민들을 해방하기 위한 ‘조선민족 해방전쟁’인데, 미국이 개입해 국제전쟁으로 만들었다는 논리입니다. 한민족의 내전에 자국의 동맹 세력을 유엔군이라는 이름하에 개입한 미국 때문에 분단이 고착화됐다는 주장입니다. 중국이 관영매체들을 동원해 미국을 비판하며 6·25전쟁에 대해 설명한 논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날 중국 관영매체들은 일제히 “1950년 미국이 한반도 남북전쟁에 개입하기 위해 12개국 이상을 모아 연합군을 결성했다”며 “300만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미군이 한반도에서 비밀리에 세균전을 펴 민간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중국의 이같은 주장은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속수무책으로 낙동강방어선까지 밀렸던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탈환한 뒤 1950년 10월 1일 38선을 넘어 북진합니다. 당시 중국의 초대 국무원 총리를 지내던 저우언라이는 “이 전쟁은 내전이므로 남조선군이 38선을 넘는 것은 무방하나, 유엔군이 38선을 넘는 것은 중국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겠다”고 미국에 경고장을 날립니다.
결국 중공군이 1950년 10월 18일 압록강을 넘기 시작한 구실도 바로 6·25전쟁이 ‘내전’이라는 인식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이러한 왜곡된 인식에 바탕을 두고 현재까지 6·25전쟁을 지칭하는 명칭이 바로 ‘항미원조(抗美援朝)’입니다. 조선(북한)을 돕기 위해 미국과 맞섰다는 뜻입니다. 미군은 ‘침략군’, 중공군은 ‘해방군’이라는 논리가 이러한 인식에 바탕합니다.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에서 발원했다는 미국의 입장이 거짓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날 인민일보는 사설을 통해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감염병 위험에 다시 노출됐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중국에 그 원인을 뒤집어 씌우려 하고 있다”며 “중국을 악마화해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이어 미국을 향해 ‘중국 불안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고 맹비난합니다.
전세계를 휩쓴 코로나19가 공식 확인된지 1년 반 가까이 지나자 미·중은 그 기원을 두고 다시 맞붙고 있습니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장관은 지난달 26일 “바이러스 기원은 과학적 문제로 과학자들이 코로나19 기원을 연구하도록 해야 한다”며 “내가 만난 모든 다른 나라의 외교장관들도 바이러스 기원이 정치적으로 조작되거나 특정 나라를 비난해서는 안 되고 국제 사회가 분열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데 동의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미국이) 지난해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우한 바이러스’라고 부르는 것을 봤다”며 “미국은 처음부터 코로나19 사태를 정치화하려 했고 바이러스를 낙인찍기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왕 장관의 이같은 발언이 나온 직후 왕 장관, 셰펑 부장관과 회담했던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코로나19 기원 문제를 직접 거론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특히 중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홍콩의 민주주의, 신장 위구르 인권 침해 문제, 남중국해에서의 항행의 자유, 대만해협 안정 등도 모두 거론합니다. 셔먼 부장관은 “우리의 가치와 이익, 우리의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의 가치와 이익에 역행하고 국제 규정에 기반한 질서를 훼손한다”며 중국에 직격타를 날렸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더 나아가 지난 4일 대만에 7억5000만달러(약 8600억원) 규모의 무기 판매를 승인했습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 이후 대만에 무기 판매를 승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지난 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대만 정부는 자국의 고급 기술 인력의 중국 방문 금지 명령을 조만간 내릴 전망입니다.
미·중 갈등이 끝을 모르고 가속화되는 가운데 한국은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로 빠르게 빠져들고 있습니다. 문제는 미·중 충돌이 심해질수록 안보와 경제 분야를 넘어 6·25전쟁 등 역사 분야로까지 충돌이 전이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아픈 역사까지 세계 패권을 둘러싼 경쟁의 요소가 되고 있는 현실이 우려스럽습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신화통신과 인민일보 등 중국 관영 매체들이 지난 4일 일제히 보도한 ‘7가지 대죄’라는 제목의 글의 일부분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글은 미국이 자국의 동맹체계를 이용해 7개의 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의 죄’ 7가지는 △폭력 △약탈 △권리침해 △파괴 △거짓말 △비호 △내분 등입니다.
6.25전쟁이 내전(內戰)?
6·25전쟁은 명백히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지만, 사학계와 국제법 학계에서는 오랜 시간 전쟁의 근본적인 성격을 두고 여러 의견이 대립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6·25전쟁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국제전 양상을 띠었다는 점에서 6·25전쟁이 내전이라는 주장은 현재는 주로 북한과 중국에서만 주류 입장으로 통용됩니다.북한은 6·25전쟁을 국제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우리 민족 내부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규정합니다. 이른바 ‘이승만 괴뢰 정권’ 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남조선 인민들을 해방하기 위한 ‘조선민족 해방전쟁’인데, 미국이 개입해 국제전쟁으로 만들었다는 논리입니다. 한민족의 내전에 자국의 동맹 세력을 유엔군이라는 이름하에 개입한 미국 때문에 분단이 고착화됐다는 주장입니다. 중국이 관영매체들을 동원해 미국을 비판하며 6·25전쟁에 대해 설명한 논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날 중국 관영매체들은 일제히 “1950년 미국이 한반도 남북전쟁에 개입하기 위해 12개국 이상을 모아 연합군을 결성했다”며 “300만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미군이 한반도에서 비밀리에 세균전을 펴 민간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중국의 이같은 주장은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속수무책으로 낙동강방어선까지 밀렸던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탈환한 뒤 1950년 10월 1일 38선을 넘어 북진합니다. 당시 중국의 초대 국무원 총리를 지내던 저우언라이는 “이 전쟁은 내전이므로 남조선군이 38선을 넘는 것은 무방하나, 유엔군이 38선을 넘는 것은 중국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겠다”고 미국에 경고장을 날립니다.
결국 중공군이 1950년 10월 18일 압록강을 넘기 시작한 구실도 바로 6·25전쟁이 ‘내전’이라는 인식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이러한 왜곡된 인식에 바탕을 두고 현재까지 6·25전쟁을 지칭하는 명칭이 바로 ‘항미원조(抗美援朝)’입니다. 조선(북한)을 돕기 위해 미국과 맞섰다는 뜻입니다. 미군은 ‘침략군’, 중공군은 ‘해방군’이라는 논리가 이러한 인식에 바탕합니다.
美中, 코로나19 기원 두고 신경전
이날 중국 관영 매체들이 꼽은 미국의 7가지 죄에는 ‘거짓말’도 포함돼있었습니다. 신화통신은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진실을 조작하는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며 그 예시로 코로나19 중국 발원론을 들었습니다.코로나19가 중국 우한에서 발원했다는 미국의 입장이 거짓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날 인민일보는 사설을 통해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감염병 위험에 다시 노출됐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중국에 그 원인을 뒤집어 씌우려 하고 있다”며 “중국을 악마화해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이어 미국을 향해 ‘중국 불안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고 맹비난합니다.
전세계를 휩쓴 코로나19가 공식 확인된지 1년 반 가까이 지나자 미·중은 그 기원을 두고 다시 맞붙고 있습니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장관은 지난달 26일 “바이러스 기원은 과학적 문제로 과학자들이 코로나19 기원을 연구하도록 해야 한다”며 “내가 만난 모든 다른 나라의 외교장관들도 바이러스 기원이 정치적으로 조작되거나 특정 나라를 비난해서는 안 되고 국제 사회가 분열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데 동의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미국이) 지난해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우한 바이러스’라고 부르는 것을 봤다”며 “미국은 처음부터 코로나19 사태를 정치화하려 했고 바이러스를 낙인찍기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왕 장관의 이같은 발언이 나온 직후 왕 장관, 셰펑 부장관과 회담했던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코로나19 기원 문제를 직접 거론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특히 중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홍콩의 민주주의, 신장 위구르 인권 침해 문제, 남중국해에서의 항행의 자유, 대만해협 안정 등도 모두 거론합니다. 셔먼 부장관은 “우리의 가치와 이익, 우리의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의 가치와 이익에 역행하고 국제 규정에 기반한 질서를 훼손한다”며 중국에 직격타를 날렸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더 나아가 지난 4일 대만에 7억5000만달러(약 8600억원) 규모의 무기 판매를 승인했습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 이후 대만에 무기 판매를 승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지난 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대만 정부는 자국의 고급 기술 인력의 중국 방문 금지 명령을 조만간 내릴 전망입니다.
미·중 갈등이 끝을 모르고 가속화되는 가운데 한국은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로 빠르게 빠져들고 있습니다. 문제는 미·중 충돌이 심해질수록 안보와 경제 분야를 넘어 6·25전쟁 등 역사 분야로까지 충돌이 전이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아픈 역사까지 세계 패권을 둘러싼 경쟁의 요소가 되고 있는 현실이 우려스럽습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