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 대신 트랙터·소방차…北, ICBM 없는 '예비군 열병식'
정권 수립일에 또 노농적위군 열병식…2000년대 들어 네번째
조용원 당 조직비서의 이례적 사열 눈길…주민 다독이며 내부 결속

북한이 정권수립 기념일('9·9절') 73주년을 맞은 9일 진행한 열병식에서는 정규군이 아닌 남측 예비군과 유사한 '노농적위군'이 전면에 나서면서 기존 열병식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전략 무기 대신 트랙터·소방차 등 '생활 장비'들과 군견 수색종대도 등장했고, 주황색 방독면을 쓴 이른바 '코로나19 부대'도 행진에 동참했다.

새로운 무기와 전략무기를 배치해 대외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열병식보다는 내부 결속에 초점을 맞춘 대내 행사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제재 장기화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자연재해 등 악재가 겹치면서 민심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대외 메시지보다는 주민 격려에 나선 셈이다.

[고침] 정치(탱크 대신 트랙터·벤츠 소방차…北, ICBM 없…)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열병식 사진 등을 보면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등 기업과 공장에서 종대를 꾸려 행진했고, 코로나19 전방에서 활약 중인 비상 방역 종대와 보건성 종대도 방독면과 마스크를 쓴 채로 뒤를 이었다.

오토바이와 트랙터로 구성된 기계화 종대도 눈길을 끌었다.

농가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농기계인 트랙터에는 122㎜ 방사포와 불새 대전차미사일 등이 실려 이색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사회안전군 군견 수색종대 행진에서는 흑갈색 군견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특별기동대 손에 얌전히 이끌려 광장을 가로질렀다.

소방대 종대는 열병식의 마지막을 장식했는데, 독일 자동차 기업 메르세데스-벤츠에서 생산한 차량와 동일한 형태의 소방차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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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농적위군은 노동자·농민·사무원 등이 직장·행정단위 별로 편성된 민간 군사 조직으로 남한의 민방위과 유사하다.

북한은 17∼60세 남성과 미혼여성 중에서 예비군 조직인 '교도대'에 편입되지 않은 모든 주민을 노농적위군 편성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농적위군 규모는 북한 인구의 4분의 1인 570만 명에 이른다.

북한은 6·25 전쟁 이후 북한에 주둔하던 중공군이 1958년 철수하자 이듬해 1월 14일 노동자·농민·제대군인·학생 등 약 50만 명 규모의 노농적위대를 창설했고, 이후 꾸준히 편성 대상 연령을 확대해왔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말이 적위군이지 사실상 중요한 노동 자원"이라며 "북한이 내부의 생산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인 만큼 이번 열병식을 노동자 및 농민 역량을 결집하는 계기로 활용한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지난 1월 당대회에서 제시한 자력갱생 노선과 5개년계획 수행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열병식의 초점도 경제 부문의 사기 진작과 성과 촉진에 맞췄다는 해석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날 집무실인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각 부문의 모범 주민들을 만나고 연회를 베푼 데서도 이번 열병식이 주민들을 격려하고 다독여 결속하려는 속내가 읽힌다.

열병식에서 연설한 리일환 당 비서도 "우리 국가와 인민은 어제 날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일심단결의 위력으로 현 난국을 타개"할 것이며 "공화국 정부는 자력자강의 원칙에서 모든 것을 우리 힘으로, 우리 식대로 해결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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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열병식 사열을 이례적으로 군 간부가 아닌 조용원 당 조직비서가 맡은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2000년대 들어 세 차례 노농적위대만의 열병식이 있었는데 2013년 열병식에는 인민무력부장(현 국방상)이, 2011년에는 김영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사열했고, 2008년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건강 악화로 열병식에 불참하면서 따로 사열 행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아울러 북한이 역대 세 차례 노농적위대 열병식 모두 노동당 또는 군 창건일이 아닌 정권 수립일에 즈음해 진행한 것은 국가 수립이라는 성격과 의미로 풀이된다.

한편 이번 열병식에 참석한 군 간부의 서열에도 변화가 관측됐다.

조선중앙통신은 열병식에 참석한 군 간부를 권영진 군 총정치국장, 리영길 국방상, 림광일 군 총참모장 순으로 호명해 국방상이 총참모장보다 서열이 앞서있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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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