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후보는 국내 은행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는데요. 이 후보는 "다른 나라 은행들은 코로나 시기에 이익률이 줄었는데 한국의 은행들은 확 늘었다"며 "결국 정부 정책의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은행들이 코로나 위기 극복 과정에서 기여하지 않는다는 게 이 후보의 시각입니다.
이 후보의 주장을 따져봤습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3월 발표한 '2021년 상반기 국내은행 영업실적'을 보면, 상반기 국내은행의 당기순이익은 10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조원 늘어났습니다. 이 후보의 말처럼 올해 은행들의 실적은 지난해 보다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은행들의 실적이 개선된 것은 이 후보의 진단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국내은행의 당기순이익 증가분의 절반 이상은 산업은행 몫이었습니다. 산업은행이 HMM의 전환사채(CB) 전환권을 행사하면서 1조7000억원의 비이자이익을 올렸고, 대우조선해양 주식평가이익·한국전력 배당수익 등 영업외이익 1조1000억원을 거두는 등 일시적 요인이 작용했습니다.
집값이 뛰면서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늘어난데다 정부의 대출규제로 '영끌' 대출 수요가 증가하는 등 대출 총량이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기에 기준금리가 두 차례 인상되면서 자연스럽게 이자이익은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해 국내 은행의 영업실적은 어땠을까요? 국내 은행의 순이익은 전년 대비 1조6000억원 감소했습니다. 은행들은 코로나 위기 극복이라는 정부 시책에 발맞춰 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 등에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국내 은행만 유독 탐욕스럽다는 식의 이 후보 주장은 반쪽짜리 팩트에 근거한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 후보는 "가난하면 안 빌려주고, 빌려줘도 조금밖에 안 빌려주고 이자를 엄청나게 높게 내야 한다"며 "정의롭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신용도가 높은 고(高)신용자에 대한 금융 역차별이 오히려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고신용자의 대출 증가를 억제하고, 중·저신용자에 대한 중금리 대출은 장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고신용자의 금리는 오르고, 중·저신용자 금리는 반대로 내리는 왜곡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을 우대하지 않고, 대출에서 차별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요? 이 후보의 주장처럼 은행이 신용이나 금리 등과 상관없이 자선 기업처럼 돈을 빌려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저신용자들이 돈을 잘 갚으면 좋겠지만, 잘 갚지 못한다면 은행 부실은 커질 것입니다. 은행에 노후자금을 맡긴 사람들에게 저신용자의 선의를 믿고 이런 리스크를 함께 부담하자고 요구할 수 있을까요? 비단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뿐 아니라 국가 경제까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담보가 없는 저신용자에게 무담보 대출로 자립을 도운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의 대출 금리는 연 20%에 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은행을 누구도 약자를 약탈하는 악덕 고리대금업자로 부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2006년에는 노벨평화상이 주어졌습니다. 대출 규모와 금리는 돈을 떼일 위험(신용)에 따라 정해지는 게 금융의 원칙과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원칙과 상식을 거스르는 정책을 폈을 때 따르는 부작용은 오롯이 국민의 몫이 될 것입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