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전 안보실장, 첫 입장서 '흉악범 추방' 정당성 강조
홍보수석, 브리핑서 "공세 말고 협조" 반격…'페스카마號'도 거론하며 文조준
권성동 대행 가세 "나포 5일만 북송, 부실검증"…靑출신 윤건영 "제대로 된 조사 있었다" 재반박
특검·국조 '안갯속'… 서로 "안 피한다"지만 동상이몽 셈법 속 기싸움
'文청와대' 지목한 대통령실…'어민북송' 신·구권력 전면전(종합)
지난 2019년 11월 초 발생한 '탈북어민 북송' 사건을 놓고 신·구 권력이 17일 정면 충돌했다.

전임 문재인정부 청와대가 이날 오전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명의 첫 입장문을 통해 '흉악범 추방'의 정당성을 주장하자,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도 5시간 뒤 최영범 홍보수석 브리핑에서 "정치공세 대신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라"며 반격했다.

대통령실은 별도 자료에서 "문재인 정부 청와대"를 수차례 지목, 최종적인 칼끝은 당시 청와대로 향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양측 모두 특검·국정조사 카드를 거론하고 있지만 동상이몽의 셈법을 가동하고 있어 당장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양쪽 모두 쉽사리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세로 전면전에 돌입한 형국이어서 불길은 더 커지고 있다.

'文청와대' 지목한 대통령실…'어민북송' 신·구권력 전면전(종합)
◇ 정의용 "국민 보호 위한 최선 결정" 최영범 "北 원하는대로 사지로 보내"
북한으로 돌려보낸 어민 2명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부터 귀순 의사의 진정성, 북송 결정 배경에 대한 판단에서까지 양측 설명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입장문에서 해당 사건을 각각 '흉악범 추방'과 '탈북어민 강제북송'으로 규정한 것부터가 이를 보여준다.

정 전 실장은 북송 어민들이 동료 16명을 살해했다는 과정을 상술하며 이들을 "희대의 엽기적인 살인마"로 표현했다.

이들이 해군에 나포된 뒤 합동신문 때 귀순의향서를 제출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귀순 의사 표명 시점이나 방식에 비춰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과 절차에 따라 국민 보호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한 것"이라며 "국내법도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는 추방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국제법상으로도 난민으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반면 최 수석은 브리핑에서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탈북 어민을 엽기적 살인마로 규정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우리 정부 기관이 우리 법 절차에 따라 충분한 조사를 거쳐 결론을 내렸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은 보도 참고자료에서도 "자백 외엔 물증이 전무했다"며 "청와대는 (어민이) 우리 측으로 넘어오기도 전에 '흉악범 프레임'을 씌워 북송을 미리 결정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귀순한 탈북자도 헌법상 우리 국민으로 간주하는 국내법과 고문방지협약에 따른 강제송환금지 원칙 등 국제법을 무시하며 귀순자의 범죄 행위만 부각했다"고 지적했다.

북송 결정 과정을 두고서도 정 전 실장은 "북한으로부터 먼저 송환 요청은 없었다.

인수 의사를 확인해야 하기에 북측에 먼저 의사를 타진했다"고 밝힌 반면, 최 수석은 "북한이 원하는 대로 사지로 보냈다"고 직격했다.

이 사건의 '은폐' 여부를 놓고서도 양측은 다른 주장을 폈다.

정 전 실장은 "추방 직후 국회 외통위에 바로 보고하고 언론에도 공개했다.

정보위에도 비공개로 상세히 보고했다"며 '사후' 조치에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최 수석은 "국회 보고도 언론에 노출되자마자 마지못해 한 것"이라며 당시 송환 절차 직전 공동경비구역(JSA) 대대장의 안보실 1차장 '직보' 사태를 언급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또 2020년 9월 해수부 소속 공무원 피살 사건도 언급하며 "(당시엔) 신호정보(SI)를 장시간 방치해 북한군에 의한 피살을 막지 못했으면서도, 2019년 탈북 어민 처리에서는 신호 정보를 기민하게 활용해 흉악범으로 간주, 강제북송을 결정하는 등 모순된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文청와대' 지목한 대통령실…'어민북송' 신·구권력 전면전(종합)
◇ "거리낄 것 없다" "피할 이유 없다"지만…특검·국조 난망
양측은 정치권의 특검·국조 주장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각자 내건 '조건'이 다른 만큼 특검·국조의 실현 가능성은 안갯속이다.

정 전 실장은 "아무것도 거리낄 없이 없다"면서도 "그러나 새로운 사실이 추가로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현 정부가 기존의 판단을 어떤 이유로 또 어떤 과정을 통해 번복했는지도 특검과 국조에서 함께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조건을 걸었다.

이와 달리 최 수석은 "특검이나 국정조사는 여야가 합의하면 피할 이유가 없다"면서도 "야당이 다수 의석을 믿고 진실을 호도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아닌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여야의 입장도 엇갈리는 상황이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탈북어민 북송' 관련 국조를 제안하자, 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정례 간담회에서 대통령실 사적채용 비선논란 동시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역제안했다.

특검·국조 여부와는 별개로 당분간 사안은 계속 굴러갈 전망이다.

대통령실은 '보도 참고자료' 목적으로 별도 배포한 자료에서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재발 방지에 대한 모든 조치를 해나가겠다"며 공언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도 가세했다.

권 대행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정 전 실장이 강제북송된 탈북어민을 향해 '희대의 엽기적 살인마들'이라며 강제북송 사건을 두둔하고 나섰다.

북한의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믿은 것"이라며 "나포 5일 만에 강제북송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부실 검증"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더해 탈북 어민의 북송 당시 장면을 찍은 영상이 있음을 통일부가 공식 확인함에 따라, 해당 영상이 공개될 경우 사진과는 또다른 수준의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도 대통령실 브리핑 후 조오섭 대변인 서면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실이 본격적인 사정정국 시작을 공식 선언했다.

전방위 수사와 대대적인 정치공세로 신북풍 몰이를 할 일이냐"며 날을 세웠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었던 민주당 윤건영 의원도 페이스북 글에서 "제대로 된 조사는 있었다.

(합동신문은) 다른 북송 사례에 비춰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다.

스스로 16명을 죽였다고 자백했는데, 어떤 이유로 이들이 살인마가 아니냐. 그들의 자백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전에 군이 입수한 첩보 내용과 일치했다"며 재반박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이 자료에서 "인권과 법치를 강조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도 과거 페스카마호에서 우리 국민을 살해한 외국인 선원도 우리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한다고 한 바 있다"며 문 전 대통령을 직접 거론했다.

문 전 대통령이 1996년 참치잡이 원양어선에서 조선족 선원 6명이 선상 반란으로 한국인 선원 11명을 살해한 사건의 피고인측 변론을 맡았던 것을 정조준한 것이다.

윤 의원은 이에 "그들이 잡힌 배 위에 살인의 어떤 물증도 남아 있지 않았다"며 "대통령실이 거론했다는 페스카마호 살인 사건은 증거와 증인이 여럿 있었다는 점에서 이 사건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당초 보도 참고자료 배포 주체를 '국가안보실'로 표기, 전·현 정부의 국가안보실간 전선이 구축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이후 대통령실은 "실무자 착오"라며 주체를 '대통령실'로 바로잡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