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중요한 의사결정 국면마다 등장해 기류를 바꿔 놓은 것도 초선 의원들이었습니다. 앞서 권 원내대표의 ‘당 대표 권한대행’ 체제에서 비대위로의 전환을 주도한 것이 대표적인데요. 배현진 의원이 지난 7월 29일 최고위원 사퇴를 선언하면서 당 지도체제 전환의 신호탄을 쐈습니다. 비대위 체제 전환을 요구하는 연판장에는 초선 의원 32명이 뜻을 함께 했습니다. 이 연판장은 박수영 의원이 주도했습니다. 박 의원은 최근 당내 ‘비윤(비윤석열)계’를 겨냥해 “정권 창출 4달 만에 무슨 비윤인가? 사찰이 싫으면 스님이 떠나라”고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초선 의원들의 의견이 당내에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의 의견이 ‘윤심(尹心‧윤 대통령 의중)’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의 두 축이었던 권 원내대표와 장제원 의원이 2선으로 후퇴하는 듯한 상황에서 초‧재선 의원들이 ‘신(新)윤핵관’ 그룹으로 부상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정치권에서는 이들의 행보가 기존의 초선 의원들에게 기대되는 모습과는 결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기득권을 가진 당의 주류 세력에 맞서 ‘쓴소리’를 이어갔던 개혁 소장파들의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일 텐데요. 보수 정당 소장파의 역사는 ‘남‧원‧정’ 트리오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0년 16대 국회에서 당 개혁 어젠다를 주도하며 영남권 중진들과 맞섰던 남경필 전 경기지사,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정병국 전 의원을 의미합니다.
세 사람은 이후 ‘미래연대(16대)’, ‘수요모임(17대)’ 등을 결성해 수구보수 이미지가 강했던 한나라당의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17대 총선 공천에서 대대적인 물갈이를 주도한 것도 이들이었습니다. 당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를 포함해 60여명의 현역 국회의원이 출마를 포기하거나 공천에서 탈락했습니다. 김문수 당시 공천심사위원장의 역할도 컸지만 ‘남원정’의 역할이 없었다면 물갈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18대 국회에서는 개혁 성향의 초선 모임인 ‘민본21’이 등장했습니다. 권영진, 권택기, 김선동, 김성식, 김성태, 김영우, 신성범, 윤석용, 정태근, 주광덕, 현기환, 황영철 등 초선의원 12명이 창립멤버였는데요. 친이(친이명박)계, 친박(친박근혜)계 등 계파를 초월한 모임으로도 주목받았습니다.
이들은 ‘여당 내 야당’ 역할을 자처하며 당시 이명박 정부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광우병 파동 촛불 시위 정국에서는 재협상에 준하는 추가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경제 정책인 ‘감세 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저소득층 예산 확대 등을 요구했습니다. 이밖에도 당‧정‧청 인적 쇄신과 청와대와 당의 수평적인 관계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19대 국회에서는 중진이 된 남경필 의원과 ‘민본21’ 출신 의원 등 당내 소장파가 주축이 돼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을 발족했습니다.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방지법, 순환출자 금지법 등을 잇따라 내놓으며 기업들이 ‘보수정당도 더 이상 우리편이 아니다’라며 긴장하게 만들었는데요. 당시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4‧11 총선에서 경제민주화를 새누리당의 주요 정책으로 공론화한 뒤에는 이혜훈 강석훈 안종범 등 친박계 의원들이 합류하면서 세를 불렸습니다.
하지만 친박·친이 계파정치가 심화되면서 개혁 소장파모임들은 힘을 잃어갔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당이 사실상 와해되면서 개혁의 불씨를 살릴 틈이 없었습니다. 이후에도 개혁 성향의 모임들이 출범했지만 과거처럼 존재감을 드러내는데는 실패했습니다.
21대 국회에서는 친박·친이계 등의 계파색이 희미해진 가운데 '친윤계'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115명) 중 과반(63명)에 달하는 당내 초선 의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4일 대구 김광석거리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초선이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의 ‘전위대’가 되어 활동하고 있다”며 당내 초선 의원들을 직격했습니다. 이 전 대표는 “윤핵관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했을 때, 왜 초선의원들이 그것을 말이라고 앞 다퉈 추인하며 사슴이라고 이야기한 일부 양심 있는 사람들을 집단린치하느냐”고 비판했습니다.
이 전 대표의 과격한 언어가 당내 초선 의원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다만 당의 주류에 맞서, 혹은 대통령실에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왕년의 ‘초선 의원들’과 달리 ‘윤심(尹心)’에만 주파수를 맞추는 초선 의원들의 행보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은 이 전 대표뿐만은 아닌 듯 합니다.
고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