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연금개혁이 뒤늦게 첫발을 뗐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는 지난 16일 민간 자문위원회 구성을 의결하고 내년 1월 말까지 연금개혁 방안에 대한 초안을 만들어 특위에 제출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은 돈 낼 사람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기금 고갈 시기는 점차 당겨지고 있어 개혁이 시급한 상황이다. 정치권도 그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연금개혁이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데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하는 만큼 험난한 설득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어서다. 어느 정부에서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16일 취임 이후 국회 첫 시정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16일 취임 이후 국회 첫 시정연설에서 "지속 가능한 복지 제도를 구현하고 빈틈 없는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려면 연금 개혁이 필요하다"며 "지금 추진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게 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야당의 협력을 요청했다. /사진=연합뉴스

월급 70% 보장”…‘꿈의 연금으로 시작했지만

국민연금은 박정희 정부 때 처음 논의됐다. 박 대통령은 1973년 1월 12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근로자의 복지를 위해 여러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며 내년부터 사회보장연금제도를 만드는 등 복지정책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발표한 뒤 국민복지연금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같은 해 1차 석유 파동의 여파로 ‘시기상조론’이 고개를 들면서 없던 일이 됐다.

국민연금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건 13년 후인 1986년이었다. 한 차례 무산된 이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경제 관료들이 “영국·독일 등이 부국인 이유는 연금제도 덕분에 은퇴자들이 노후에 빈곤을 걱정하지 않고 안정된 삶을 살기 때문”이라고 전두환 대통령을 설득한 것. 국민연금을 줄곧 반대해왔던 전 대통령은 4개월 후 특별기자회견을 열고 “이제는 노령인구가 크게 늘고 있어 노후 생계 대책도 그 중요도를 더해가고 있어 국민연금제도를 조속히 실시해야 한다”며 도입을 공식화했다.

초기 국민연금은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꿈의 연금’이었다. 정부는 월급에서 3%(이후 5년마다 3%포인트씩 올라 1988년부터 9%로 고정)만 내면 만 60세부터 자신이 받던 월급의 70%를 지급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떼이는 액수가 크지 않다 보니 가입자는 빠르게 늘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 연금 대상자를 전 국민으로 확대하면서 진통을 겪었다. ‘유리 지갑’인 직장 가입자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소득 파악이 어려운 농어민과 영세 자영업자에 부담스러운 보험료가 부과되면서 혼선을 빚은 탓이다. 불공평한 징수체계를 문제 삼아 연금제도를 중단하자는 여론도 등장했다. 김 대통령은 1999년 2월 21일 “국민연금은 선정(善政) 중의 선정이다. 이렇게 좋은 연금제도를 실천하는데 칭찬은커녕 큰 질책을 받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권장 보험료를 통고했던 것을 현실에 맞게 시정하고, 보험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 했던 것을 취소시키는 등 관계부처에 엄중히 명령하고 질책해 보완하겠다”고 했다.

30년뒤 바닥 DJ, 소득대체율·수급 연령 첫 손질

국민연금이 ‘개혁’이란 수술대에 오르게 된 건 시행 10년 만인 1998년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소득대체율(노후에 받는 돈)을 70%에서 60%로 축소하고 수급 연령도 만 60세에서 5년 미룬 만 65세로 연장했다. 당시 기준으로 2033년이면 기금이 고갈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출범 첫해부터 연금개혁 의지를 내비쳤던 노무현 정부는 9%인 보험료율을 15.9%(2030년까지)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50%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했다. 노 대통령은 2003년 11월 21일 대국회 서신에서 “지금 세대는 소득의 9%만 보험료로 내면 되지만 2050년 우리 자녀 세대는 30%를 보험료로 부담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2005년 10월 12일 정기국회 연설에서도 “연금개혁은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정당이나 정치적 이해득실을 떠나 범국민적 합의를 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 한나라당의 반대로 보험료율은 그대로 둔 채 소득대체율을 2008년 50%로 내리고 2009년부터는 매년 0.5%포인트씩 낮춰 2028년에는 40%가 되도록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4월 6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해 모두 발언하고 있다.  한경DB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4월 6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해 모두 발언하고 있다. 한경DB
이명박 대통령은 연금개혁과 더불어 기금운용 개혁을 꺼내 들었다.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기금운용본부를 독립시킨 뒤 기금 수익률을 두 배로 올려 국민들의 보험료 부담을 낮추자는 취지였다. 이 대통령은 2008년 9월 9일 ‘KBS특집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보험료 미납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또다시 보험료를 올릴 경우 미납자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에 “(국민연금 개혁과 함께) 연기금을 잘 운용하는 것도 필요하다”면서 “국민연금 기금 수익률을 현 4~5%에서 10% 이상 수익률을 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이 대통령의 구상은 수익률 위주의 연금 운용의 역효과를 우려하는 야당의 반발과 함께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논의가 중단됐다.

취임 직후 3개 공적연금(공무원·사학·군인) 개혁을 국정 과제로 제시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공무원들이 연금을 많이 내고(소득월액 7%→9%), 적게 받도록(연금 지급률 1.9%→1.7%) 바꿨다. 연금을 받는 나이도 65세로 늦췄다. 박 대통령은 2014년 10월 28일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나라와 후손들에게 큰 빚을 떠넘겨선 안 된다”며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국가를 위해 헌신해 온 공무원들의 희생을 요구해야 한다는 점에선 어느 정부도 이런 개혁이 두렵고 피하고 싶을 것”이라며 “역대 정부마다 근본적인 처방을 미루면서 오늘의 위기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가 약 1년간의 논의를 거쳐 보험료율 인상안을 담은 복수의 개혁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반발 여론이 커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8월 13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대통령이 보기에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국민 동의와 사회적 합의가 없는 정부의 일방적인 개편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사회적 합의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연금특위가 세 가지 개편안을 제시했지만 야당이 “책임 있는 정부안 하나를 가져오라”고 요구했고 2020년 복지부가 정부의 단일안 제출을 포기한다고 밝히면서 완전히 좌초됐다.

서희연 기자 cu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