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저격해 정계 입문한 이재명…사법 리스크에 정치생명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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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장·경기지사 거쳐 대권 주자 반열 오른 제1야당 대표
어렸을 적부터 자기 주장 강해...외향적 같지만 원래는 내성적
2022년 대선 패배 직후 보궐선거·당 대표 선거 출마 '승부수'
인권 변호사, 기초 및 광역단체장 출신으로 거대 정당의 대선 후보와 당 대표까지 올랐다는 점은 이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높이 평가받는 부분이다.
내성적이지만 이따금 드러나는 ‘직선적이고 다혈질인 성격’은 이재명 스스로 자신의 단점으로 인정한다. 이재명과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최측근인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연수원 시절 이재명에 대해 “당시에도 자기 주장이 강했다”고 기억한다.
술을 못 마시는 건 아니지만 즐기는 스타일은 아니다. 오랜 기간 가까운 거리에서 이재명을 지켜본 한 인사는 “10년 넘게 이재명과 일했지만 ‘술 땡긴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가난= 지독하게도 가난했던 이재명의 어린 시절은 현재 ‘정치인 이재명’의 정치 철학을 형성시킨 배경으로 볼 수 있다. 먹고사는 일 때문에 자식 챙길 여력이 없던 모친이 이재명 출생신고를 제때 하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초등학교 진학을 앞두고서야 출생신고를 했는데, 아들이 태어난 날짜를 잊은 모친이 점쟁이에게 받은 길일(음력 12월 22일)을 생일로 신고했다.
경북 안동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경기 성남으로 이사했는데, 부친은 상대원 시장 청소부로 일하며 고물을 수거해 돈벌이를 했다. 모친과 여동생은 화장실을 지키며 요금 받는 일을 했다고 한다. 주변 사람이 저마다 자신의 어릴 적 얘길 하며 “고생하고 자랐다”고 말하면 이재명은 “내가 더 고생하면서 컸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이재명은 2017년 첫 대권 도전 선언을 자신이 15세 때 소년공으로 일했던 경기 성남 오리엔트 시계공장에서 했다.
파크뷰 사건은 초기에는 정계·법조계 고위 인사들에 대한 특혜분양 이슈로 시작했지만 점차 용도변경과 건축허가 특혜 사건으로 발전됐다. 이재명은 1999년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 과정에 정·관계 실세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국가정보원 문건으로 작성됐고, 청와대에도 보고됐다고 폭로했다. 이재명이 특혜 사건에 연루됐다며 고발한 성남시장은 민주당계 정당 소속(김병량)이었다.
지금은 민주당 소속이긴 하지만, 정치 인생의 시작은 민주당 소속 정치인 저격이었던 셈이다. 이 때문에 반대편이었던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이재명을 찾아와 사건에 대해 물었다는 후문이다. 이 사건은 이재명이 이른바 ‘검사 사칭’으로 첫 전과(무고·공무원자격 사칭)가 생긴 사건이기도 하다.
이재명은 파크뷰 사건을 폭로하고 정·관계 실력자들과 싸우던 당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무창으로 공룡을 잡아보겠다. 힘이 부쳐 내가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공룡에게 상처는 입힐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공룡의 존재만이라도 세상에 알릴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사회 변호사로 활동하던 이재명의 결기가 잘 느껴지는 대목이다. ▶성남 시립병원 설립 운동= 이재명이 정치 입문을 결심한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재명은 성남병원, 인하병원 등 성남에 있는 종합병원 두 곳이 2003년 폐업하자 시립병원 설립을 주도했다. 성남시립병원 설립을 위한 범시민추진위원회 공동대표였던 이재명은 2004년 ‘성남시립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발의를 주도했지만, 시의회에서 부결되자 의장석을 점거했다. 이로 인해 이재명은 공용물건손상·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벌금 500만원을 냈다. 이재명은 2021년 경기지사 재임 당시 성남시의료원을 찾은 자리에서 “성남시의료원은 제가 정치를 결심한 이유”라며 의료원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성남시 모라토리엄 선언= 이재명 이름 석 자를 전국에 알린 사건이다. 이재명의 한 측근 인사가 “이재명의 정치 인생은 시작부터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이슈로 시작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성남시 모라토리엄을 두고 한 얘기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일반 사람에게 정치인 이재명의 이름을 확실히 알린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재명은 2010년 7월 민선 5기 성남시장 취임 한 달여 만에 모라토리엄(채무 지급유예)을 전격 선언했다. 성남시가 판교신도시 조성을 위해 당시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의 판교특별회계에서 끌어다 쓴 5200억원을 갚을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비교적 부촌으로 알려진 성남시가 돌연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자 이는 순식간에 전국적 관심사가 됐다.
하지만 이후 국토해양부가 성남시에 특별회계에서 빌려 쓴 자금에 대한 정산 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됐다. 이 때문에 ‘모라토리엄 선언의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데, 정치적 이벤트를 만들기 위해 선언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후 2014년 1월 이재명은 모라토리엄 극복 선언을 하며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그해 6월 치러진 민선 6기 성남시장 재선에 성공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노이즈 마케팅이 통했을 수 있지만, 이재명이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 사건”이라고 했다. ▶경기도 계곡 불법설치물 철거= 행정가 이재명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일화다. 경기지사로 있던 2019년 경기도는 가평 등 도내 주요 계곡 불법 설치물 철거 및 정비 작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여름 성수기 시즌에 계곡을 불법 점유해 돈벌이를 하는 등의 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계곡의 개인 사업자들과 마찰을 빚었다. 이재명은 자신의 이 같은 정책에 적대적이던 개인 사업자들을 직접 만나 난상 토론을 벌였다. 허름한 건물 안에 흰색 셔츠 바람으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지역민과 둘러 앉아 토론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얘기는 이재명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불법 시설물 운영자들이 이재명을 상대로 “왜 온 것이냐”고 말하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지만 이재명은 침착하면서도 단호하게 이들을 설득하고 회유했다. 이재명은 이 자리에서 “예외를 한 번 인정하면 끊임없이 예외가 확대된다. 일률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여러분이 요구하는 불법 시설물 철거) 유예는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수십 년을 유예해줬다. 언제까지 유예할 수 없다”며 반발을 정면 돌파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16분짜리 영상의 조회 수는 842만 회에 달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고, 행정가로서 이재명의 면모를 잘 보여줬다는 평가가 있다. ▶두 차례 대선 도전=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치러진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문재인·안희정에 이은 3위였지만, 기초자치단체장(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을 전국구 정치인으로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 ‘친노 적자’로 탄탄한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던 안희정과의 득표율 차이는 불과 0.3%포인트였다. 대선 경선에서의 선전은 이듬해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에 당선되는 밑바탕을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경선 과정에서 이재명이 문재인 후보에 대한 날카로운 공세로 친문(친문재인)계와 앙금의 씨앗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20대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가 된 이재명이 2021년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4년 전 민주당 대선 경선 상황을 언급하며 “모질게 한 부분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얘기했다. ▶대선 패배 후 보궐·당 대표 선거 출마= 이재명은 2022년 대선 패배 후 휴지기를 갖지 않고 3개월 만인 6월 치러진 보궐선거(인천 계양을)에 출마했다. 대장동 의혹 등 ‘사법리스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을 활용하기 위한 방탄 출마라는 비판이 많았다. 보궐선거 출마를 만류한 측근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궐선거 당선 직후인 그해 8월에는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도 출마해 당선됐다. 한 민주당 인사는 “이재명은 의사결정 전에 이런저런 찬반 의견을 다 듣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성남·경기그룹= 이재명의 성남시장·경기지사 시절 수행 그룹. 당에는 김현지 보좌관과 김남준·김지호 당 대표 정무부실장 등이 남아 있다.
김현지 보좌관은 이재명이 성남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며 몸담았던 성남시민모임(현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국장 출신이다. 2022년 9월 국회 본회의장에 있던 이재명에게 ‘전쟁입니다’라는 내용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가 그 내용이 취재진의 카메라에 잡혀 언론에 공개된 인물이기도 하다. 메시지 전문은 이렇다. “백현동 허위사실 공표, 대장동 개발 관련 허위사실 공표, 김문기 모른다 한 거 관련 의원님 출석요구서가 방금 왔습니다. 전쟁입니다.”
김남준 정무부실장은 이재명이 성남시장 시절 발탁한 언론인 출신이다. 성남시청 대변인, 경기지사 언론비서관을 지냈다. 김용·정진상과 함께 성남 핵심 3인방으로 분류된다. 이재명이 자신의 의중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김남준을 꼽는다. 김지호 정무부실장은 이재명 측근인 김병욱 의원 보좌관 출신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재명이 사석과 공석을 가리지 않고 종종 언급하는 인물. 미국의 32대 대통령으로, 뉴딜정책으로 대공황을 이겨내는 데 역할을 했다. 백범 김구와 함께 존경하는 인물로 루스벨트를 꼽는다. 이재명은 2021년 대선 후보가 되자 “좌파 정책으로 대공황을 이겨낸 루스벨트에게 배우겠다”고 한 바 있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루스벨트를 미국 대통령 중 롤 모델로 언급해 왔다. “독점, 불평등을 해소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이유에서였다. 루스벨트와 함께 미국 민주당 소속의 대표적 좌파 정치인인 버니 샌더스도 종종 언급한다. 유튜브에 ‘루스벨트, 샌더스 그리고 이재명’이라는 동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
어렸을 적부터 자기 주장 강해...외향적 같지만 원래는 내성적
2022년 대선 패배 직후 보궐선거·당 대표 선거 출마 '승부수'
민선 5·6기 성남시장(2010~2018년), 민선 7기 경기지사(2018~2021년)를 역임했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를 지냈다. 2023년 5월 현재 민주당 대표다.이재명은 경기 성남 지역에서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06년 민선 4기 성남시장,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성남 분당구갑)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선 윤석열 대통령과 맞붙어 역대 최소 24만7077표 차이로 낙선했다. 대선 패배 직후인 2022년 6월 인천 계양구을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원내에 입성했다. 2개월 뒤 역대 최고 득표율로 민주당 대표에 당선됐다.
인권 변호사, 기초 및 광역단체장 출신으로 거대 정당의 대선 후보와 당 대표까지 올랐다는 점은 이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높이 평가받는 부분이다.
이재명을 말해주는 키워드
▶내성적 성향= 이재명은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성적 성향이라는 게 주변 사람의 공통된 평가다. 이재명이 성남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함께 투쟁하던 한 시민단체 인사가 앞장서서 강경 투쟁을 하던 이재명을 눈물을 흘리며 안아준 적이 있다고 한다. “내성적 성격인데 거침없이 투쟁하는 이재명의 모습을 보니 안쓰럽다”며 안아줬다고 한다.내성적이지만 이따금 드러나는 ‘직선적이고 다혈질인 성격’은 이재명 스스로 자신의 단점으로 인정한다. 이재명과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최측근인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연수원 시절 이재명에 대해 “당시에도 자기 주장이 강했다”고 기억한다.
술을 못 마시는 건 아니지만 즐기는 스타일은 아니다. 오랜 기간 가까운 거리에서 이재명을 지켜본 한 인사는 “10년 넘게 이재명과 일했지만 ‘술 땡긴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가난= 지독하게도 가난했던 이재명의 어린 시절은 현재 ‘정치인 이재명’의 정치 철학을 형성시킨 배경으로 볼 수 있다. 먹고사는 일 때문에 자식 챙길 여력이 없던 모친이 이재명 출생신고를 제때 하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초등학교 진학을 앞두고서야 출생신고를 했는데, 아들이 태어난 날짜를 잊은 모친이 점쟁이에게 받은 길일(음력 12월 22일)을 생일로 신고했다.
경북 안동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경기 성남으로 이사했는데, 부친은 상대원 시장 청소부로 일하며 고물을 수거해 돈벌이를 했다. 모친과 여동생은 화장실을 지키며 요금 받는 일을 했다고 한다. 주변 사람이 저마다 자신의 어릴 적 얘길 하며 “고생하고 자랐다”고 말하면 이재명은 “내가 더 고생하면서 컸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이재명은 2017년 첫 대권 도전 선언을 자신이 15세 때 소년공으로 일했던 경기 성남 오리엔트 시계공장에서 했다.
이재명의 결정적 순간
▶성남 분당 파크뷰 사건=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터진 성남 분당 파크뷰 사건은 ‘변호사 이재명’의 존재를 세간에 알린 사건이다. 당시 이재명은 변호사로서 성남시민모임(현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파크뷰 사건은 초기에는 정계·법조계 고위 인사들에 대한 특혜분양 이슈로 시작했지만 점차 용도변경과 건축허가 특혜 사건으로 발전됐다. 이재명은 1999년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 과정에 정·관계 실세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국가정보원 문건으로 작성됐고, 청와대에도 보고됐다고 폭로했다. 이재명이 특혜 사건에 연루됐다며 고발한 성남시장은 민주당계 정당 소속(김병량)이었다.
지금은 민주당 소속이긴 하지만, 정치 인생의 시작은 민주당 소속 정치인 저격이었던 셈이다. 이 때문에 반대편이었던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이재명을 찾아와 사건에 대해 물었다는 후문이다. 이 사건은 이재명이 이른바 ‘검사 사칭’으로 첫 전과(무고·공무원자격 사칭)가 생긴 사건이기도 하다.
이재명은 파크뷰 사건을 폭로하고 정·관계 실력자들과 싸우던 당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무창으로 공룡을 잡아보겠다. 힘이 부쳐 내가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공룡에게 상처는 입힐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공룡의 존재만이라도 세상에 알릴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사회 변호사로 활동하던 이재명의 결기가 잘 느껴지는 대목이다. ▶성남 시립병원 설립 운동= 이재명이 정치 입문을 결심한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재명은 성남병원, 인하병원 등 성남에 있는 종합병원 두 곳이 2003년 폐업하자 시립병원 설립을 주도했다. 성남시립병원 설립을 위한 범시민추진위원회 공동대표였던 이재명은 2004년 ‘성남시립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발의를 주도했지만, 시의회에서 부결되자 의장석을 점거했다. 이로 인해 이재명은 공용물건손상·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벌금 500만원을 냈다. 이재명은 2021년 경기지사 재임 당시 성남시의료원을 찾은 자리에서 “성남시의료원은 제가 정치를 결심한 이유”라며 의료원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성남시 모라토리엄 선언= 이재명 이름 석 자를 전국에 알린 사건이다. 이재명의 한 측근 인사가 “이재명의 정치 인생은 시작부터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이슈로 시작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성남시 모라토리엄을 두고 한 얘기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일반 사람에게 정치인 이재명의 이름을 확실히 알린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재명은 2010년 7월 민선 5기 성남시장 취임 한 달여 만에 모라토리엄(채무 지급유예)을 전격 선언했다. 성남시가 판교신도시 조성을 위해 당시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의 판교특별회계에서 끌어다 쓴 5200억원을 갚을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비교적 부촌으로 알려진 성남시가 돌연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자 이는 순식간에 전국적 관심사가 됐다.
하지만 이후 국토해양부가 성남시에 특별회계에서 빌려 쓴 자금에 대한 정산 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됐다. 이 때문에 ‘모라토리엄 선언의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데, 정치적 이벤트를 만들기 위해 선언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후 2014년 1월 이재명은 모라토리엄 극복 선언을 하며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그해 6월 치러진 민선 6기 성남시장 재선에 성공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노이즈 마케팅이 통했을 수 있지만, 이재명이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 사건”이라고 했다. ▶경기도 계곡 불법설치물 철거= 행정가 이재명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일화다. 경기지사로 있던 2019년 경기도는 가평 등 도내 주요 계곡 불법 설치물 철거 및 정비 작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여름 성수기 시즌에 계곡을 불법 점유해 돈벌이를 하는 등의 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계곡의 개인 사업자들과 마찰을 빚었다. 이재명은 자신의 이 같은 정책에 적대적이던 개인 사업자들을 직접 만나 난상 토론을 벌였다. 허름한 건물 안에 흰색 셔츠 바람으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지역민과 둘러 앉아 토론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얘기는 이재명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불법 시설물 운영자들이 이재명을 상대로 “왜 온 것이냐”고 말하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지만 이재명은 침착하면서도 단호하게 이들을 설득하고 회유했다. 이재명은 이 자리에서 “예외를 한 번 인정하면 끊임없이 예외가 확대된다. 일률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여러분이 요구하는 불법 시설물 철거) 유예는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수십 년을 유예해줬다. 언제까지 유예할 수 없다”며 반발을 정면 돌파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16분짜리 영상의 조회 수는 842만 회에 달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고, 행정가로서 이재명의 면모를 잘 보여줬다는 평가가 있다. ▶두 차례 대선 도전=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치러진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문재인·안희정에 이은 3위였지만, 기초자치단체장(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을 전국구 정치인으로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 ‘친노 적자’로 탄탄한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던 안희정과의 득표율 차이는 불과 0.3%포인트였다. 대선 경선에서의 선전은 이듬해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에 당선되는 밑바탕을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경선 과정에서 이재명이 문재인 후보에 대한 날카로운 공세로 친문(친문재인)계와 앙금의 씨앗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20대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가 된 이재명이 2021년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4년 전 민주당 대선 경선 상황을 언급하며 “모질게 한 부분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얘기했다. ▶대선 패배 후 보궐·당 대표 선거 출마= 이재명은 2022년 대선 패배 후 휴지기를 갖지 않고 3개월 만인 6월 치러진 보궐선거(인천 계양을)에 출마했다. 대장동 의혹 등 ‘사법리스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을 활용하기 위한 방탄 출마라는 비판이 많았다. 보궐선거 출마를 만류한 측근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궐선거 당선 직후인 그해 8월에는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도 출마해 당선됐다. 한 민주당 인사는 “이재명은 의사결정 전에 이런저런 찬반 의견을 다 듣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이재명의 결정적 순간
▶故 구호명= 이재명의 모친. 이재명이 ‘나의 하늘’이라고 부르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2022년 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 이재명 캠프가 배포한 공식 보도자료에도 ‘인생의 멘토’는 어머니라고 나와 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연 집을 떠난 부친을 대신해 7남매를 키운 모친에 대한 존경심과 그리움이 유독 크다. 구호명 여사는 2020년 3월 13일 별세했다. ▶7인회= 이재명의 국회의원 측근 그룹. 정성호(4선)·김영진·김병욱·임종성(이상 재선)·문진석·김남국(이상 초선)·이규민 전 의원을 뜻한다. 친명 좌장 격인 정성호는 이재명의 사법연수원(18기) 동기다. 1987년 사법연수원 시절 노동법학회에서 만났다고 한다. 김영진은 현재 이재명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이다. 이재명이 대선 패배 후 보궐선거 출마, 당대표 선거 출마 등을 만류하며 거리가 멀어졌다가 최근 정무조정실장에 다시 임명되며 친명 입지를 재확인했다. 정무조정실장은 이재명의 최측근인 정진상이 맡았던 자리다. 김병욱은 이재명과 성남 정치권에서 연을 맺었다.▶성남·경기그룹= 이재명의 성남시장·경기지사 시절 수행 그룹. 당에는 김현지 보좌관과 김남준·김지호 당 대표 정무부실장 등이 남아 있다.
김현지 보좌관은 이재명이 성남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며 몸담았던 성남시민모임(현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국장 출신이다. 2022년 9월 국회 본회의장에 있던 이재명에게 ‘전쟁입니다’라는 내용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가 그 내용이 취재진의 카메라에 잡혀 언론에 공개된 인물이기도 하다. 메시지 전문은 이렇다. “백현동 허위사실 공표, 대장동 개발 관련 허위사실 공표, 김문기 모른다 한 거 관련 의원님 출석요구서가 방금 왔습니다. 전쟁입니다.”
김남준 정무부실장은 이재명이 성남시장 시절 발탁한 언론인 출신이다. 성남시청 대변인, 경기지사 언론비서관을 지냈다. 김용·정진상과 함께 성남 핵심 3인방으로 분류된다. 이재명이 자신의 의중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김남준을 꼽는다. 김지호 정무부실장은 이재명 측근인 김병욱 의원 보좌관 출신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재명이 사석과 공석을 가리지 않고 종종 언급하는 인물. 미국의 32대 대통령으로, 뉴딜정책으로 대공황을 이겨내는 데 역할을 했다. 백범 김구와 함께 존경하는 인물로 루스벨트를 꼽는다. 이재명은 2021년 대선 후보가 되자 “좌파 정책으로 대공황을 이겨낸 루스벨트에게 배우겠다”고 한 바 있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루스벨트를 미국 대통령 중 롤 모델로 언급해 왔다. “독점, 불평등을 해소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이유에서였다. 루스벨트와 함께 미국 민주당 소속의 대표적 좌파 정치인인 버니 샌더스도 종종 언급한다. 유튜브에 ‘루스벨트, 샌더스 그리고 이재명’이라는 동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