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건설 업계가 휘청거리고 있다.

지방에서 미분양 아파트가 누적되면서 업체들의 자금사정을 무겁게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는 세창(작년 10월) 삼익(작년 11월) 비콘건설(작년 11월) 한승건설(올 5월) 등에 이어 13일 내실있는 중견 건설업체로 평가받아왔던 ㈜신일이 최종 부도 처리된 데 대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젠 어지간한 업체라도 감내할 수 없는 상황에 왔다는 판단에서다.

이에따라 그동안 일각에서 제기돼 왔던 '부도 도미노' 가능성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자칫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위기상황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신일 부도 배경

신일 측은 일시적인 단기 유동성 악화가 부도의 1차적 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수년간 흑자를 유지해왔던 만큼 자금 자체가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단기 채무를 갚지 못한 미스매치(mismatch) 탓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지방 주택시장을 무리하게 공략한 데서 원인을 찾고 있다. 실제로 신일이 공사 중인 전국 18곳의 도급공사 현장 중 15곳이 지방이다. 특히 주택시장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대구지역에서만 작년에 7곳의 공사를 벌였다.

업계 관계자는 "지방 시장이 워낙 침체된 상태여서 건설사마다 지방에서 발을 빼고 수도권에 집중하는 전략을 취해왔는데 신일은 오히려 지방시장에 의욕을 보여왔다"면서 "특히 중도금 무이자대출이나 이자후불제 등의 공격적인 대응이 자금흐름을 악화시켰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산정보업체인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서울 및 수도권의 미분양 아파트는 지난 8일 현재 3111가구에 불과하지만,지방 미분양 아파트는 4만8156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입주민 피해는

신일의 부도로 이 회사가 분양한 아파트 계약자들의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한주택보증이 모든 공사현장에 대해 보증을 서고 있어 계약자들이 중도금 등을 떼일 우려는 없지만,일정 기간 입주가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주택보증이 신일아파트에 대한 권리를 넘겨받고 새 시공사를 선정하는 동안 공사가 중단될 수밖에 없다.

계약자들의 중도금 대출금리가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중도금 대출은 시공사인 신일이 보증을 서는 것을 조건으로 대출금리를 낮춰주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현재 공사 중인 신일아파트의 품질 저하도 우려된다. 우선 하도급 업체들이 공사 현장을 떠나고 새 시공사가 공사를 재개하는 과정에서 마감재.조경 등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

황용천 해밀컨설팅 사장은 "건설사가 부도나면 계약자의 피해는 어쩔 수 없게 된다"며 "주택보증과 채권단 등이 시공사를 최대한 빨리 재선정하는 게 계약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업체마다 자금 점검 '비상'

건설업계에서는 신일 부도를 계기로 줄도산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세창 등에 이어 신일까지 무너지자 "올 것이 오는 것 같다"는 분위기다. 지방 분양물량이 많은 일부 업체들은 채권단의 자금 압박이 강화될 것에 대비,유동성을 재점검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산한 모습이다.

A사 관계자는 "올초부터 신일의 자금 압박설이 흘러나왔는데 결국 부도 처리됐다"면서 "일단 루머에 휩싸이면 되돌리기 어려운 만큼 지금부터라도 철저하게 자금관리에 나서라는 경영진의 지시가 있었다"고 전했다.

신일이 다른 건설사들의 연쇄 부도를 '자극'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신일의 연대보증 등 우발채무 규모가 작년 말 기준으로 1조원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신일 하도급업체 부도→하도급업체의 다른 현장 공사 중단→다른 건설사 공사 차질 및 자금 압박→채권단 다른 건설사 자금회수' 등 부도 도미노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학권 세중코리아 사장은 "지방의 경우 투기제한 정책을 단계별로 해제하고 건설사의 단기 유동성을 지원하는 등 정부가 서둘러 대책마련에 나서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